이집트

아부심벨 신전(Abu Simbel Temple)

세울림(케니지) 2023. 8. 4. 13:14

 

알렉산드리아에서 야간열차를 이용해서

이집트 남쪽에 있는 도시인 아스완으로 간다. 

 

예정 시간보다 훨씬 오래 걸린 20시간 정도 후에 도착하였다.

 

도착 후 예약한 숙소로 찾아가서 곧바로 다음날

새벽에 출발하는 아부심벨 행 투어 버스를 예약하였다.

 

아스완에서 아부심벨까지는 버스로 4시간 가량 걸린다.

 

 

 

아부심벨에는 람세스 2세대신전이 있다.

 

좌상 뒤쪽에 있는 거대한 파사드는 높이 33m, 폭 38m에 달하며 파사드 위쪽에는

22마리의 개코원숭이들이 새겨져 있다. 원숭이들은 양팔을 올려 태양을 찬양하는 모습을

하고 몸에는 람세스 2세의 딸과 히타이트의 왕 하투실리 2세의 결혼을 증거 하는 석판이 있다.

입구 바로 위에는 큼직한 벽감이 하나 파여있고 그 안에는 태양신 라의 입상이 들어가있다.

는 왼손에는 깃털을, 오른손에는 정의와 질서의 여신 마아트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의 몸에는 람세스 2세 즉위명이기도 한 '우세르 마아트 라'가 새겨졌다.

 

 

 

그 옆에는 그의 아내, 네페르타리를 위한 소신전도 있다.

 

 

 

 

20시간가량 기차을 타고 아스완에 도착해서 몸도 피곤하고

다음날 새벽 일찍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다른 곳엔 가질 않고

숙소 주변을 거닐다가 숙소 주인장이 알려 준 생선을 전문으로 파는

식당엘 찾아가서 맛있게 식사를 하고 식당 주인장과 친구가 되었다.

 

 

 

 

이 버스를 이용해서 아프리카 사막의 새벽 공기를 가르며 아부심벨까지 왔다.

 

 

 

 

매표소에서 입장 티켓을 구입하고 비지터센터에서 정보를 

얻은 후 천천히 걸어서 아부심벨 신전으로 향한다.

 

먼저 가는 곳이 대신전이고 다음은 소신전이다.

 

푸른 물은 이집트가 자랑하는 나일강이다.

 

지금의 아부심벨 신전은 원래 자리의 장소가 아니고 이전을 한 것이다.

 

 

[이전에 관한 글을 나무위키에서 가져와 아래에 올린다.]

 

20세기 중반에 이집트 공화국을 건국한 나세르 대통령'아스완 하이 댐'을 지으며 상황이 급변했다.

이집트 정부가 나일 강 상류에 거대한 댐을 짓자, 점차 물이 차오르면서 나일 강변에 위치하던

아부심벨 신전침수의 위기에 놓이게 된 것이다. 결국 1959년에 유네스코가 주관하는 초대형 규모의

문화재 보존 프로젝트시작되었고, 아부심벨 신전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당시 전문가들은 아부심벨 주위에 소규모 방파제를 지어 아예 통째로 격리하거나,

거대한 돔을 지어 수중에서 보존하는 방안 등 여러 대책들을 제시했으나 예산상의 문제로

결국 암벽을 포함한 신전 전체를 뜯어 다른 곳으로 옮겨버리는 안이 채택되었다.

 

1964년에 아부심벨 신전을 해체하는 작업이 시작되었고, 당시 기준으로 4천2백만 달러,

2017년 기준으로는 3억 달러, 한화로는 3,600억 원이라는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으면서

아부심벨 신전을 뜯어 위쪽의 고지대로 옮기는 작업에 착수했다. 고고학자들은 신전을 포함한

암벽 전체를 평균 20톤에 달하는 거대한 돌덩어리들로 조각조각 잘라냈다.

 

이렇게 신전을 해체한 후에는 강에서 200m 정도 떨어지고 고도 상으로는 65m 정도

높은 고지대다시 신전을 조립했다. 물론 모든 유적들을 모조리 해체해 옮기지는 못했기에

일부 유적은 나일 강 속에 수몰되었지만, 아부심벨 신전을 포함한 핵심 유적들은 모두 안전히

이동했다고 한다. 아부심벨을 자세히 보면 공사 당시 신전을 분할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1967년 신전을 언덕 지형으로 이전하면서 신전이 매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언덕과

언덕 내부 사이에 대형 돔설치하였다. 신전 오른쪽에 돔 내부에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있다.

이곳으로 들어가면 신전이 콘크리트 돔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3천 년의 시대를 사이에 두고 세워진 고대와 현대의 건축 양식이 공존하고 있는 기묘한 모습이다.

 

아부심벨 신전을 이전할 당시 미국이 특히 많은 지원을 하였고, 이집트 정부는

감사의 표시로 아스완 하이 댐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있었던 덴두르 신전을 미국에 기증하였다.

미국은 이 신전을 분할하여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내부로 이전하여 다시 조립하여 전시 중이다.

 

 

 

대한민국도 아부심벨 신전 이전을 위하여 1만 달러를 지원하였고,

1963년 10월 1일에는 3원, 4원권의 누비아 유적 보호운동 기념우표

발행하여 그 수익금의 일부를 유네스코에 기부하였다.

아부심벨 신전 이전 사업을 계기로 1972년에는 세계문화유산협약 생겨난다.

 

 

 

 

람세스 2세의 대신전 입구에 있는 4개의 좌상 중 하나는 예전에 지진으로

인해서 상체가 떨어져 나갔다. 이전 시 원래 상태를 유지하는 차원에서

떨어져 나간 상체 부위도 원래상태대로 그대로 방치하기로 하였다.

 

대신전은 대략 짓는 데에 20년 정도가 걸렸다. 람세스 2세가 즉위한 지 24년 정도 되는

BC1265년에 완공되었다. 아문, 라 호라크티, 프타, 람세스 2세 본인에게 헌정된 신전으로

람세스 2세가 생전 지은 수없이 많은 신전들 가운데에서도 독보적으로 아름다운 신전으로 손꼽힌다.

 

 

 

 

람세스 2세 좌상의 높이는 자그마치 20미터가 된다.

좌상을 가운데 두고 벽에 세 개의 다른 그림이 새겨져있다.

 

제일 아래 그림은 적을 묶어서 데리고 가는 그림이다.

 

 

 

 

서로 마주 보고 땅에 파묻으며 줄로 연결하는 것은 파피루스와

연꽃이라고 한다. 파피루스하 이집트를 의미하고 연꽃상 이집트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두 이집트를 모두 통치하는 람세스 2세 자신의

권위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

 

두 개 중 아래 것은 람세스 2세 본인의 이름을 나타내는 상형문자이다.

이집트 파라오가 갖는 이름은 5개가 있다고 한다.

(출생명, 즉위명, 네브티이름, 호루스이름, 황금호루스이름)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오시리스의 모습을 한

람세스 2세의 입상 8개가 세워진 기둥의 방이 있다.

 

 

 

 

왼쪽벽에 서 있는 오시리스의 모습을 한 람세스 2세 입상이다.

 

 

 

왼쪽에 서 있는 4개의 입상이다.

 

 

 

오른쪽에 서 있는 오시리스의 모습을 한 람세스 2세 입상이다.

 

 

 

똑 같이 4개의 입상이 있고 천장은 독수리 그림으로 덮여있다.

 

인류 역사문화에서 새들의 제왕인 독수리는 영원불멸의 삶, 전사의 상징,

재생과 부활, 태양의 빛으로 상징되었고, 문학작품 속에서는 삶의 역경과 시련에도

좌절하지 않는 용기와 자연과 온 우주와 공존하는 상징으로 표현되었다.

 

 

 

 

이와 같이 기둥에 새겨진 그림이 이렇게 잘 보존되어 있다.

 

 

 

 

람세스 2세는 성경에 나오는 출애굽과 연관이 있다고 본다.

모세와 동시대 사람이던지 아니면 그 보다 조금 앞선 시대 사람으로 본다.

 

이 벽화는 히브리 사람들이 이집트(애굽)에서 종(노예)살이를

할 때 학대를 받는 모습을 표현한 사실을 알리는 그림이다.

 

 

 

 

그 현장에 내가 증인으로 나서기로 한다.

 

 

 

 

람세스 2세 자신이 직접 카데사 전투에서 싸우는 모습이다.

 

팔이 이중으로 보이는 이유는 역동성을 보이기 위함이라는 설이 있다.

 

 

 

 

이와 같이 벽에는 카데시 전투의 장면들을 가득 새겼다.

 

 

 

 

벽면 가득히 람세스 2세가 치른 전투의 벽화가 새겨져 있다. 

 

 

 

 

 

람세스 2세의 권위를 최대치로 표현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벽화의 대부분은 카데시 전투에 관한 것이지만 일부 누비아

아시아 지방에서 일어난 전쟁을 묘사한 그림도 있다.

 

 

 

 

벽면 가득 메운 그림과 상형문자들, 정말 대단하다.

 

 

 

 

 

위 두 개의 그림은 아주 비슷하게 보이지만 뜻은 다를 게다.

 

 

 

 

 

이것도 두 개가 비슷하게 보인다.

 

 

 

 

일일이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이집트에 관해서 더 공부해야겠다.

 

 

 

 

작은 방으로 들어가면 이런 모습이다.

 

 

 

 

눈에 확 들어오는 그림이 있어서 카메라를 들이대본다.

 

이건 람세스 2세의 힘과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람세스 2세의 성기를 드러낸 것이다.

 

 

 

 

마지막 제일 안쪽에 있는 방을 지성소라고 부른다.

 

보통의 경우 지성소에는 하나의 신을 모시는데,

여기에는 네 개의 신이 이렇게 서 있다.

 

왼쪽부터 어둠 신 프타이고, 다음이 태양의 신 아문 라이고,

그다음은 람세스 2세 본인 그리고 마지막은 태양 운행을 관장하는 신

호라크티라고 한다. 이렇게 람세스 2세 자신을 신격화하였다.

 

여기에는 일 년에 두 번 해 뜨는 즈음에 20분 가량 빛이

들어온다는데 매년 2월 22일과 10월 22일이 바로 그날이다.

 

3,500년 전에 어떻게 해가 들어오는 시간을 계산해서 이렇게 신전을

지었는지 상상이 안된다. 그런데 신전을 옮기는 과정에서 예전과

하루 시차가 난다고 한다. 그리고 어둠 신인 프타에게는

어둠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빛이 비치지 않는다고 한다.

 

 

 

 

 

지성소 옆 벽에는 이런 배 형상 그림이 그려져 있다.

 

 

 

 

수많은 관광객들은 사진을 찍으라 모두가 분주하다.

 

 

 

 

람세스 2세 좌상 무릎 아래에는 아들, 딸, 아내 그리고 어머니

형상을 규모를 작게 만들어서 다리 사이에 올려놓았다.

 

 

 

 

여기서도 기념사진을 한 장 남기고 가겠다.

 

 

 

 

100미터 옆에 있는 소신전으로 간다.

 

규모가 작아서 소신전이라 불리지만 정식 이름은 '하토르 네페르타리의 신전'이다.

대신전에서 북동쪽으로 100m 정도 떨어진 장소에 세워졌고 사랑의 여신 하토르와

람세스 2세의 왕비인 네페르타리에게 바쳐졌다.

 

 

 

 

100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를 사진으로 보면 이렇다.

 

 

 

 

여기에도 다리 옆에 작은 석상을 세워놓았다.

 

 

 

 

왼쪽은 람세스 2세 그 옆은 아내인 네페르타리 석상이다.

 

 

 

 

대신전과 마찬가지로 암벽을 그대로 깎아 입구를 만들었고,

정면에는 람세스 2세의 입상 4개네페르타리의 입상 2개가 세워져 있다.

 

두 사람의 입상의 크기는 거의 동등하며 그들의 입상 아래에는 왕자와 공주들의 입상이

작은 크기로 세워져 있다. 신분이 높을수록 인물의 크기를 크게 묘사했던 고대 이집트에서

파라오와 왕비의 크기를 거의 비슷비슷하게 조각해 놓은 경우는 아부심벨의 소신전이 거의 유일하다.

전통적으로 왕비의 조각상을 세우긴 했어도 파라오의 조각상 무릎 정도까지의 키로 깎아놓는 것이

전통적인 관례였기 때문. 파라오와 왕비의 조각상들 바로 곁에는 왕자와 공주들의 상이 세워져 있다.

 

 

 

 

대신전을 꼼꼼히 보고 나와서 주위도 세밀히 살펴보다 보니

이 줄에 서서 기려렸다가 소신전을 보면 돌아가는 버스 시간이 

도저히 맞지 않을 것 같아서 소신전에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였다.

 

 

 

 

 

그대신 소신전 내부 사진 몇 장을 입수하여 그냥 올리기로 하겠다.

 

 

 

 

 

 

 

이상이 입수한 소신전 내부 사진이다.

 

 

 


네페르타리. Nina de Garis Davies (1881–1965)의 그림

 

 

소신전 내부의 하토르 기둥들

 


출처 : 더퍼스트미디어(http://www.thefirstmedia.net)

 

 

소신전의 구조배치는 대신전을 축소해 놓은 것과 비슷하다.

다만 대신전의 경우 입구를 통과하면 8개의 거대한 파라오 입상이 세워진 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반면 소신전은 입구를 통과하면 6개의 기둥들이 받치고 있는 방이 나온다.

 

기둥에는 사랑의 여신 하토르의 머리 모양이 새겨져 있고, 벽과 기둥에는

네페르타리 , 크눔, 콘수토트, 이시스, 마아트 등의 신과 노니는 장면이 있다.

또한 람세스 2세가 신들에게 향료를 바치는 장면도 있다.

6개의 기둥이 있는 방을 통과해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3개의 문이 있는 벽과

조그만 방이 나온다. 이곳에도 역시 신들을 찬미하는 내용의 벽화가 가득한데,

주로 소의 모습을 한 하토르 여신에게 네페르타리가 공물을 바치고 숭배하는

모습이 주를 이루고 있다. 소신전 맨 안쪽에는 조그마한 크기의 지성소가 있다.

 

 

 

 

이곳에도 대신전처럼 신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는 남아있지 않고, 성소에 남은 것은 하토르 여신과 합일을

이루어 신격화된 네페르타리 왕비를 그린 벽화 정도밖에 없다.

(글은 나무위키에서 가져옴)

 

 

 

 

나일강을 지나가는 배에서는 무조건 신전을 볼 수 있게 되어있다.

 

 

 

 

아부심벨 신전의 위용을 자신은 물론이고 이웃 나라에 까지

널리 알리고 이집트를  66년간 통치한 람세스 2세의 야심을 볼 수 있다. 

 

 

 

 

아스완 하이댐을 건설해서 나일강 물로 만든 나세르 호수 모습이다.

 

 

 

 

배를 이용해서 아부심벨 신전 입구까지 갈 수도 있다.

 

 

 

 

 

아부심벨 신전 이전 공사 사진이다.

 

 

 

 

그 당시 유네스코가 큰 힘이 되었다.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보다는 약 1,300년 정도 뒤에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새벽에 출발한 아스완으로 다시 되돌아 달려간다.

 

 

 

 

 

여기 아프리카 사막 모습은 이렇게 생겼다.

 

 

 

 

나일강을 끼고 있어서 비록 사막이지만 푸르르다.

 

 

 

 

남쪽 제일 끝에 있는 아부심벨은 원래 누비아(수단) 땅이었다.

지금 가는 아스완까지가 누비아 땅이라고 보면 된다.

 

 

 

 

사막을 달려 달려서 아스완에 왔다.

 

누비아 빌리지를 보고 아스완을 보는 게 다음 일정이다.

 

 

 

이집트 여행을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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