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안렉산드리아 여행 두 번째 이야기이다.
어제 두 곳에 이어 오늘은 네 곳을 방문할 것이다.
모두 알렉산드리아가 자랑하는 유명 장소들이다.
오늘 첫 번째로 방문하는 장소는 이집트 콥트 정교회이다.
콥트 정교회는 이집트와 북동 아프리카 및 중동에 기반을 둔 오리엔탈 정교회이다.
오리엔탈 정교회(Oriental Orthodox Church, Oriental Orthodoxy)는
에베소 공의회, 칼케돈 공의회에서 결의된 교리를 거부한
서아시아, 이집트, 에티오피아의 전통 기독교 교회들이다.
(삼위일체를 받아들이지않고 오직 신성만을 믿는다.)
이에 속하는 교회로는 시리아와 인도의 "시리아 정교회",
이집트의 "콥트 정교회", 아르메니아의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
에티오피아의 "에티오피아 정교회"등을 들 수 있다.
먼저 성 마가 교회 안으로 들어가보기로 한다.
알렉산드리아의 "성 마가 교회"는 마가가 자신의 사역의
후반부에 이집트에 들어와서 최초의 복음을 전파하여 개종케 한 유태인
구두 수선공(아니아누스)의 옛 집터에 AD 42년에 세워진 교회라고 한다.
마가의 상징물은 동물 사자이다. 마가복음은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설교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사자의 모습은 세례 요한을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로 표현한 데서 유래하며 예술적 전승은
그 소리를 사자의 울음으로 비유하였다. 날개는 에스겔서 1장 10절의
네 개 달린 생물체에 관한 환상을 네 복음서들에 적용시켜 이해한 데서 비롯한다.
안렉산드리아 성 마가 교회 내부 모습은 이러하다.
이집트에 처음 세워진 교회당 안에서 잠시 믿음의 선배들을 생각한다.
로마 카톨릭 교회 내부보다는 덜 화려하다는 느낌이다.
오병이어(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 성화가 있다.
이건 성찬때 사용한 예수님의 '살과 피'를 의미하는 것 같이 보인다.
마가가 살던 집인 마가의 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이 있었고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도 있어서 마가는 누구보다 더 성찬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 나열되어 있는 이름은 이집트 콥트 정교회 교황들의 이름이다.
1대 교황이 성 마가(St. Mark)이고,
2대 교황은 구두 수선공이었던 아니아누스(Annianus)이다.
마가는 바나바의 조카이다.(골로새서 4;10) 그는 요한으로도
불리웠는데 사도행전에서는 마가를 세배데의 아들 요한과
구별하기 위해서, ‘마가라 하는 요한’이라고 부르고 있다.
요한은 히브리식, 마가는 로마식 이름이다.
그는 예수님의 12제자의 반열에는 들지 못했으나
마가복음을 기록할 만큼 예수님의 행적을 잘 알고 있었다.
마가복음은 제일 먼저 기록되어 다른 복음서의 자료가 되었다.
한 가지의 실례로 겟세마네동산에서 예수님이 대제사장이
보낸 무리에게 잡히실 때에 위기가 닥치자 덮고 있던 홑이불을 던져 버리고
알몸으로 도망친 청년이 있었다는 기록은 마가만의 독특한 기록인데 사람들은
이 청년이 바로 마가 자신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마가복음 14;51-52)
초대교회의 전승에 의하면 마가는 베드로의 통역관이었으며
충실한 비서였고 말년에 알렉산드리아에 최초로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세워서 이집트 선교에 전념하다가, 순교한 것(68년)으로 전해진다.
마가는 사도바울이 로마감옥에 갇혀 있을 때 곁에서 도우기도 하였다.
교황들의 이름이 적힌 비석 아래 동굴에 성 마가의 머리가 묻혀 있는 지하 무덤이 있다.
현재 이집트 콥트 정교회의 교황청이 있는 카이로의 성 마가 교회에도
마가의 무덤이 있는데 아마도 머리와 시신을 따로 무덤을 만든 것 같다.
성 마가의 무덤은 굳게 잠겨있고 일반인에게 공개를 잘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나는 과감하게 교회 측에 부탁을 하여 승낙을 얻었다.
문을 열고 지하 무덤으로 향하였다.
성 마가 옆에는 항상 사자가 함께한다.
마가의 전도로 교회가 부흥되자 핍박이 일어났다.
핍박자들은 마가를 잡아 밧줄로 목을 매어 길거리를 질질 끌고 다녔다
(AD 68년 부활절사건으로 기술되고 있음).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그의 시신을 태우려 했다.
그러자 하늘에서 천둥 번개가 치며 폭우가 쏟아졌고, 그의 시신은 온전히 보존되었다.
그의 시신은 미소를 띠고 있었는데, 아니아누스 집으로 모셔져 봉헌되었다고 한다.
마가의 시신을 AD 828년 이슬람이 이집트를 지배하고
있던 시절 베니스 사람들이 성 마가를 수호 성인으로 삼고 훔쳐갔다.
이슬람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돼지고기로 그 유해를 덮어 갔다고 한다.
이 마가의 유해를 봉헌한 성당이 바로 이태리 베니스에
있는 산 마르코 성당(Basilica di San Marco)이다.
산 마르코에 있던 마가의 유해는 1968년 6월 22일 116대 콥트교
교황 키릴로스(Pope Kyrillos Ⅵ of Alexandria)의 끈질긴
노력으로 로마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하여 원위치로 봉환되었다.
이 곳에 성 마가의 머리 부분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지하 1층에는 모자이크 벽화가 있는데 마가의 일생에 대해서 보여준다.
이건 전제 모자이크 벽화 중 일부 마지막 부분이다.
전체 모자이크 벽화의 모습을 공개한다.
첫 번째 그림은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모습이다.
두 번째 그림은 로마 군인들에게 잡혀가는 예수님을 그리고 있다.
세 번째 그림은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게 물로 세례를 줄 때
하늘에서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오시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네 번째 그림은 콥트 정교회 전승에 대한 그림인데 마가가 최초의
회심자 구두 수선공 아니 아누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장면이다.
다섯 번째 그림은 마가가 군인들에게 잡혀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여섯 번째 그림은 마가가 순교하는 모습이고
일곱 번째 그림은 마가에게 복음을 전해 들었던
구두 수선공 아니아누스를 표현하고 있다.
구두 수선공 아니아누스는 마가의 순교 이후에
성경을 연구하는 학교를 지었다고 하는데,
그 학교가 지금의 알렉산드리아 대학의 기원이라고 전해진다.
(퍼온 글)
지하 무덤을 보고 교회로 올라오니 여신도들이 청소를 하고 있다.
그들에게 인사를 건내고 사진을 함께 찍었다.
아랍 여인과는 보통의 경우 신체 접촉을 할 수 없는 게 규칙이다.
그러나 이 여인들은 무슬림이 아닌 나와 같은 기독교인이다.
먼저 사진을 찍어준 여인은 자기도 함께 찍어야 한다고 내 옆으로 다가선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형제자매들이라고 하니 수긍을 한다.
성 마가 교회 방문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아직도 비는 조금씩 내리고 있다.
성 마가 교회 주위에는 콥트 정교회 교인들이 모여서 살고 있다.
다음 찾아갈 장소를 물어보니 여기서 천천히 걸어서 가면 된단다.
다음 장소로 가기 전 교회 측에서 운영하는 바로 옆에 있는 학교로 갔다.
정면에는 성 마가 사진이 있고 벽 옆에는 역대 교황 사진이 붙어있다.
안내를 받아 학교 안을 둘러보았다.
학생들에게는 교회에서 장학금을 지불하여 무상 교육을 시킨다고 한다.
성 마가를 배경으로 하여 이곳에 들른 기념사진을 한 장 남긴다.
성 마가 교회 입구는 이렇게 생겼다.
경찰의 철저한 검문검색을 받은 후에 입장할 수 있게 되어있다.
시장기를 느끼고 거리에서 보이는 KFC로 들어갔다.
다음 찾아가야 할 장소를 물어보니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거리상 차를 타고 가란다. 조금 전 콥트 교인은 나에게 천천히
걸어서 가면 된다고 하였는데 갈등이 생겨서 다시 물어보았다.
여전히 차를 타고 가라고 조언한다. 나는 걸어서 가는 길을 또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카운터 쪽에서 일하던 아가씨가 나에게 다가온다.
왜 걸어가려는지를 나에게 물어본다. 나는 순간 별생각 없이
'그냥 돈이 없어서 그런다'라고 말을 하였더니 잠시 후
카운터에서 다시 나와서 나를 잠시 보자고 한다.
그리고 내손에 종이를 쥐어주면서 버스를 이용해서 가라고 한다.
순간 이 모습을 지켜 본 아랍 남성의 고함 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사건의 심각성을 간파한 나는 이내 그 자리를 떠나야만 했다.
내가 찾아갈 장소는 바로 이곳이다.
내 손안에 쥐어준 것을 살펴보니 이집트 지폐였다.
순간 나는 무엇에 강하게 한 방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밖에 나와서 경찰에게 가는 길 방향에 대해서 묻고 있는 나에게
부르는 소리가 있어서 고개를 돌려 보았더니 카운터에서 일하던
아가씨가 손짓을 하며 나를 부르는 것이다. 내가 나가고 난 후 일부러 따라
나와서 가는 길과 이용해야 할 버스를 정확하게 가르쳐주러 나온 것이란다.
이집트인에 대한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편견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시간이다.
그 아가씨는 항상 조심해서 다니라면서 급히 내 앞에서 사라져 가 버렸다.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그 아가씨의 얼굴이 가끔 희미하게 떠 오를 뿐이다.
다음에 알렉산드리아에 다시 간다면 꼭
그 KFC로 찾아가서 "천사표 아가씨"를 만나 보고 싶다.
사람을 잘못 판단한 죄를 회개하며 아가씨가 가르쳐준 대로 잘 찾아왔다.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 시대에 지어진 폼페이 기둥(Pompey's Pillar)은
이렇게 멀쩡히 서 있으나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사원은 이미 사라져버렸다.
안내판을 보고 따라가면 이런 유물들을 볼 수 있다.
아직도 땅은 군데군데 파여있으며 여전히 유물을 캐고 있다.
폼페이 기둥은 서기 297년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한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코린트 양식의 승리의 기둥으로 알려져 있다.
기둥의 높이는 26.85m 지름이 2.71m인데 아스완의
채석장에서 자른 분홍색 화강암 한 개로 만들었다.
상부의 주두는 코린트 양식과 유사한 유형을 하고 있으며 돌의 재질은 회색 화강암이다.
분홍색 화강암 한 조각인 기둥 축의 무게는 285톤으로 추정한다.
이곳에 있는 현재의 스핑크스 모습이다.
스핑크스는 사자의 몸에 사람의 머리가 달린 상상 속의 동물이다.
이 괴물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동남아시아 등 지역의 설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옆에는 두 개의 스핑크스 석상과 신전 유적지와 다양한 조각조각이 널려 있다.
두 번째 스핑크스 모습이다.
폼페이 기둥과 두 개의 스핑크스는 조화를 잘 이룬다.
도심지 주위에 쌓여 있는 유적지는 아직도 발굴이 한창이다.
아직 전시 준비를 마치지 못한 유물들은 번호만 있을 뿐이다.
방문객들은 천천히 걸어서 스핑크스와 폼페이 기둥을 살펴본다.
관람을 마치고 다음 목적지로 발길을 돌린다.
찾아가는 목적지는 불과 400미터 정도 떨어져 있어서 걸어서 가면 된다.
오늘(2023년 2월 14일) 세 번째 방문지는 알렉산드리아 카타콤이다.
Kom El Shoqafa의 카타콤바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위치한
역사적 고고학 유적지로 중세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간주됩니다.
네크로폴리스는 헬레니즘과 초기 제국 로마의 영향을 받은 파라오 장례 숭배의
알렉산드리아 무덤, 조각상 및 고고학적 유물 시리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위키백과)
로마 시대 석관이 마당에 널려있다.
지하 묘지는 잃어버린 당나귀를 찾던 목동에 의해서 우연히 발견되었다고 한다.
깊숙이 판 땅 아래 끝자락에 선 여행객 모습이다.
아래로 내려온 후 출발 장소인 위를 바라보는 광경이다.
이 장소는 지금 들어온 입구 모습이다.
지하 무덤은 흙을 파서 이렇게 만들었다.
카타콤은 귀족의 가족 묘지로 추정된다.
그래서 나름 체계적으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벽에는 이런 형상의 부조가 있다.
양쪽으로 서로 대칭을 이룬다.
이 또한 마찬가기로 양쪽으로 대칭을 이룬다.
마치 좌 청룡, 우 백호를 보는 그런 느낌이다.
무덤 깊숙한 자리에는 이런 부조가 새겨져 있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로마가 짬뽕을 이룬 것 같다.
메두사 머리, 황소, 포도줄기와 열매, 태양, 달 등등....
바벨론 종교에서 시작된 요소가 한 곳에 종합세트를 이루고 있다.
요즘 '종교의 기원'이라는 책을 통해서 배운 것이 많은 도움을 준다.
세계를 여행하면서 각종 종교에 대해서 의구심이 많이 있었는데
종교적 예술품을 대하면서 하나씩 의구심을 해결하고 있는 중이다.
좀 더 연구하고 공부한 후 내가 확신하고 남에게 자신 있게 전달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면 "여행을 통한 예술과 종교의 만남"을 전하려고 한다.
그날이 빨리 올 수 있기를 학수 고대하고 계속해서 노력을 하련다.
죽음 후에 시신을 보존할 필요를 느낀 것은 최후의 심판 때
육신의 부활이 있으리 라는 그리스도교적인 기대 때문에 생긴 것이다.
위에 사진으로 보여 준 좌, 우 대칭 부조는 무덤 입구에 있고
무덤 안쪽에서도 이미 보여준 부조를 이렇게 볼 수 있다.
부조의 내용으로 보아 인간이 추구하는 것은 '풍요와 다산'이 우선이다.
{카타콤은 2세기부터 만들어졌는데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가 시작된 4세기 초엽까지 계속되었다.
로마인들도 이런 지하묘지를 알고 있었으나
굳이 이런 묘지까지 없애려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외부에는 로마식 석관이 나열되어 있다.
여기 지하가 지금 보고 나온 지하 무덤자리이다.
카타콤의 상세 지도가 있고 부연 설명도 적혀있다.
또 다른 지하 무덤으로 가는 길이 있지만 생략하련다.
바깥쪽에도 일부 무덤들이 있다.
여기서 발굴한 유물들은 엄청나게 많아 보인다.
오늘 마지막 가는 장소이다.
이곳의 이름은 로마극장(Roman Theater)이다.
서기 4세기경 로마시대의 유적으로
원형극장과 빌라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형극장에서는 회의, 공연, 강의등을 했을 것이다.
현재의 로마극장은 도심지 근처에 있다.
800명 정도 관중이 앉을 수 있다고 한다.
로마극장 맞은편에도 이런 의자가 잘 갖추어져 있다.
로마극장 주변의 고고학적 설명서이다.
로마의 목욕탕 문화는 어디에서도 볼 수 있다.
로마극장 뒤편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은 로마극장 정면을 배경으로 하여 찍은 사진이다.
전체의 모습은 이렇게 생겼고 뒤편에는 고급 빌라 흔적이 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파로스 등대 모습이 보인다.
그 당시 지진으로 인해 물속에 수장된 유물을 꺼내는 장면이다.
바닷속에서 꺼낸 유물들을 여기에 전시하였다.
수중 작업을 하는 모습 사진이다.
수많은 유물들은 자세한 설명과 함께 전시해 놓았다.
대단한 작업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이 또한 그중에 하나이다.
로마극장(Roman Theater)을 마지막 방문지로 하고 안렉산드라아를 떠나려 한다.
2023년 2월 14일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방문지는 네 곳이다.
1. 성 마가 교회
2. 폼페이 기둥
3. 카타콤(중세 7대 불가사의)
4. 알렉산드리아 로마극장
알렉산드리아 기차역으로 가서 야간열차를 이용해서 아스완으로 간다.
이집트 여행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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