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행후기

[스크랩] 한국 여행 (안동)

세울림(케니지) 2011. 9. 20. 06:20

 

 

생애 처음으로 황토방에서 잠을 자고난 후의 아침은 이미 사진을 통해 보았던

하동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너무나 상쾌한 기분을 느끼게하는 그런 아침 이었습니다.

 

박경리씨의 대하소설 "흙" 을 생각하면서 아침길을 걷고 이제는 또 다른 한국적인 도시인

"안동" 으로 갈 차례입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대한민국을 방문했을때 한 군데를

찍어서 간 곳이라고 하여서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동에서 안동으로가는 차편이 마땅치 않아서 나의 오랜 친구인 영감에게(서울거주)

부탁을하여 우리를 먼저 안동에 내려주고 서울로 가라고 하였더니 흔쾌히 승낙을하여

우리부부는 영감이 운전하는 차를타고 안동으로 갈수 있었습니다. 

 

 

 

 

 

앞에 보이는 큰 기와 대문을 들어서면 안동입니다.

 

 

 

우리는 일본 요코하마에서 만난 우리 형제클럽 사람들과 미리 연락이 닿아서 만나기로한 장소로 갔습니다.

 

 

 

 

 일본서 만나고 한국서 또 만나니 반가움은 배가 되었습니다.

 

 

 

 

 

우리옆에 서있는 부부가 일본서 만난 장 총재 부부이고 그 옆은 안동클럽 회장님입니다.

먼저 간단한 요기를하고 첫번째로 방문한 곳은 "정통문화 콘텐츠 박물관" 입니다.

 

 

 

 

 

 

 전통 복장의 남, 녀가 방문객을 맞이합니다.

 

 

 

 

이 곳에는 안동을 소개하는 여러가지 프로그램이 있어서 안에 들어서면 직접 직원의

안내를 받으면서 안동에 관한 모든 정보를 자세히 전해 들을수 있었습니다. 

 

 

 

 

 

 

 양반탈을 쓰고 체험 춤사위도 한번 해보았습니다.

 

 

 

 

 

이 곳을 다 둘러보고 나온 우리는 하회마을을 가서 보기로하고  안동 사람들의 안내를 받았습니다.

 

 

                                                                                                                                                                     

 

그럼 여기서 먼저 하회 마을을 소개 하도록 하겠습니다.(퍼온글임)





 

마을소개 현재위치 : > 하회마을 소개 > 마을소개



 

낙동강이 큰 S자 모양으로 마을 주변을 휘돌아 간다. 그래서 하회(河回)라 했다. 오른편 안동시에서 흘러나와 왼 편으로 흘러간다.


하회마을을 찍은 항공사진  

안동하회마을(중요민속자료 제122호)은 풍산류씨가 600여 년간 대대로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인 동성마을이며, 와가(瓦家:기와집) 초가(草家)가 오랜 역사 속에서도 잘 보존 된 곳이다. 특히 조선시대 대 유학자인 겸암 류운룡과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 형제가 태어난 곳으로도 유명하다.
 마을 이름을 하회(河回)라 한 것은 낙동강이 ‘S'자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 안고 흐르는 데서 유래되었다. 하회마을은 풍수지리적으로 태극형·연화부수형·행주형에 일컬어지며, 이미 조선시대부터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도 유명하였다. 마을의 동쪽에 태백산에서 뻗어 나온 해발 271m의 화산(花山)이 있고, 이 화산의 줄기가 낮은 구릉지를 형성하면서 마을의 서쪽 끝까지 뻗어있으며,

수령이 600여 년 된 느티나무가 있는 곳이 마을에서 가장 높은 중심부에 해당한다.
 하회마을의 집들은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강을 향해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좌향이 일정하지 않다. 한국의 다른 마을의 집들이 정남향 또는 동남향을 하고 있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다. 또한 큰 와가(기와집)를 중심으로 주변의 초가들이 원형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는 것도 특징이라 하겠다.

  하회마을에는 서민들이 놀았던 ‘하회별신굿탈놀이’와 선비들의 풍류놀이였던 ‘선유줄불놀이’가 현재까지도 전승되고 있고, 우리나라의 전통생활문화와 고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문화유산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마을 주민 및 가옥
하회마을은 현재에도 주민이 살고 있는 자연부락이다. 한말까지 350여 호가 살았으나 현재는 150여 호가 살아가고 있다. 마을 내에는 총127가옥이 있으며 437개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27개 가옥 중 12개 가옥이 보물 및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풍수지리(風水地理)적 지형(地形)
 태백산에서 뻗어온 지맥이 화산(花山)과 북애(北厓)를 이루고, 일월산에서 뻗어온 지맥이 남산과 부용대(芙蓉臺)를 이루어 서로 만난 곳을 낙동강이 S자형으로 감싸 돌아가므로, 하회마을을「山太極 水太極 - 산과 물이 태극 모양」또는「蓮花浮水形-물에 떠있는 연꽃 모양」이라 부른다. 풍수지리에 따른 마을의 주산(主山)을 화산(花山)이라 부르고, 부용대 앞을 흐르는 낙동강을 화천(花川)이라 함은 연화(蓮花)에서 비롯한 이름이라 한다.

 


하회마을에는 지금도 강에 나룻배가 운행된다(관광용)

세거(世居)한 성씨(姓氏)들
하회마을의 풍산류씨의 세거 이전에는 허씨(許氏)와 안씨(安氏)가 먼저 세거하였다고 한다. 하회마을에는 “허씨 터전에 안씨 문전에 류씨 배판”이란 말이 전래되고 있으며, 하회탈의 제작자가 「허도령」이었다는 구전(口傳) 및 강 건너 광덕동의 건짓골에 허정승(許政丞)의 묘가 있어 지금도 해마다 류씨들이 벌초를 하고 있으며, 숭정(崇禎)15년(1642)의 동원록(洞員錄)에는 류씨 이외에도 극히 적은 가구의 허씨와 안씨(安氏)가 함께 기재되어 있다.


 

풍산류씨(豊山柳氏)의 입향(入鄕)에 관한 전설(傳說)
풍산류씨(豊山柳氏)는 본래 풍산 상리에 살았으므로 본향(本鄕)이 풍산(豊山)이지만, 제7세 전서(典書) 류종혜(柳從惠)공이 화산에 여러 번(가뭄, 홍수, 평상시) 올라가서 물의 흐름이나 산세며 기후조건 등을 몸소 관찰한 후에 이곳으로 터를 결정했다고 한다.
입향에 관하여「나눔」의 전설이 있는데, 집을 건축하려 하였으나 기둥이 3번이나 넘어져 크게 낭패를 당하던 중 꿈에 신령이 현몽하기를 여기에 터를 얻으려면 3년 동안 활만인(活萬人)을 하라는 계시를 받고 큰 고개 밖에다 초막을 짓고 지나가는 행인에게 음식과 노자 및 짚신을 나누어주기도 하고, 참외를 심어 인근에 나누어주기도 하면서 수많은 사람에게 활인(活人)을 하고서야 하회마을에 터전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입향 후 풍산류씨들은 계속된 후손들의 중앙관계에의 진출로 점점 성장하였으며, 입암(立巖) 류중영(柳仲영), 귀촌(龜村) 류경심(柳景深), 겸암(謙菴) 류운룡(柳雲龍),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선생 등의 조선중기에 배출한 명신들로 더욱 번창하게 되었다.


1999년 영국여왕 엘리자베스2세가 하회마을을 다녀갔다.  

 

 

하회마을의 전래 놀이
  하회마을에는 서민들을 위한 놀이와 선비들을 위한 놀이가 병존하였다.
   하회별신굿탈놀이 ------ 굿을 겸한 탈놀이 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
   하회선유줄불놀이 ------ 시회(詩會)를 겸한 선유(船遊) 놀이

 

 

이상 위의글은 하회 마을을 소개한것을 도움을 주려고 가져온 것입니다.

아무쪼록 하회마을에 관하여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에 유네스코에 등재 되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여기를 방문하였을때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목각으로 만든 모형물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습니다.

 

 

 

 

 

 

 

마을 전체에 흐르는 공기는 이렇게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이 마을에는 실제로 사람들이 생활을 하고 있어서 더욱 친밀함으로 우리곁에 다가옴을 느낌니다.

 

 

 

 

 

 

이 모습은 그냥 평화로운 시골입니다.

오전에 떠났던 하동과는  다른 느낌입니다.

 

 

 

 

 

 

 

이런 길을 걸으면서 세계 어디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한국적인 정취를 가져보았습니다.

 

 

 

 

비 포장길 이라서 불편하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편안하다는 생각이 더 지배적으로 다가옵니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초가집은 더욱 아름답게 보였고,,,,,,

 

 

 

 

 

 

당장  대문으로 달려가서 큰소리로 "이리 오너라" 를 누군가가 외칠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며,,,,,

 

 

 

 

 

 

또 아이러니 하게도 기와집 옆의 초가집 앞엔 이 집 주인의 차인듯,,

커다란 벤츠가 한대 세워져 있기도하여,,,, 경제력의 파워를 짐작해봅니다.

 

 

 

 

 

 

 

걸어 가는길마다, 보는 곳마다 그냥 사진을 찍어 댔습니다.

 

 

 

 

 

 

카메라를 든 지씨아줌마의 입에서는 연신 탄성이 나옵니다...아!~~~

 

 

 

 

 

 

정말 그리도 보고 싶었던 한국적인 정취입니다.

 

 

 

 

 

 

 

이 볼거리 많은데를 그냥 오후시간 잠시동안 만을 대하고 간다는게 어찌보면

하회마을을 무시하는 처서라고도 할수 있을 만큼 이 곳은 볼거리와 느낄거리로

가득찬 진정 대한민국의 아니 이제는 세계가 인정하는 문화 유산임이 틀림없습니다.

 

 

 

 

 

 

 

옛날 실력이 아직은 조금 남아 있는듯 보입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그네를 타면 춘향이로 탈바꿈 할수 있으려나~~~

 

기와집과 초가집들이 배경이 되고 아름다운 산세를 뒤로하여 그네를

뛰는 모습은 평생 간직 할수있는 추억거리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우리가 말로만 하던 "세상은 좁다" 라는 사실이 증명된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나의 오랜 친구 "영감" 이 우리를 하동에서부터 안동까지 차를 태워주고 우리를 내려주고

서울로 바로 가기가 섭섭하여 안동분들과 함께 점심을 하러 가는 도중 그 분들의 차 안에서

영감님이 찾는 안동사람 (두 사람 30년전 한때 같은 직장 생활을 한 경험이 있음) 의 이름을 물어보니

공교롭게도 우리를 인도하여준 분(지씨아줌마 왼쪽)의 친오빠가 내 친구 영감이 찾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후부터는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가 손님이 아니고 오히려 나의 오랜 친구 영감님이

반가운 손님으로 변하여 덕분에 우리는 칙사 대접을 받는 그런 사건이 발생 하였습니다.

 

정말 사람은 "죄 짓고는 못산다" 는 말이 피부에 와 닿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이제는 그만 보고 하회마을을 빠져 나가야 하는데,,,

일부러 발걸음 속도를 줄여서 걸어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나룻터에는 나룻배가 덩그란히 놓여 있어서 여행객의 마음을  알아주는듯 하였습니다.

 

 

 

 

 

 

 

이 아름다운 곳을 다음에 꼭 또 와보기로하고 일행은 이 곳을 빠져나와서 나의 친구 영감의

친구가 기다리는 식당으로 우리는 달려가서 주객이 바뀐 분위기를 맛보며 맛난 음식과

음식보다 더 감칠 맛나는 대화의 향기로 우리들 인생에 추억거리를 하나 더 보태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 만난 안동 사람들이고 처음 가본 안동 이지만 어찌 그리 내 마음에

와 닿는지 다음에 한국을 또 방문한다면 정말 다시 가보고 싶은 곳으로 자리 매김하였습니다.

 

 

 

 

 

 

 

메모 : 2010년 7월 31일 부터 9월 3일 까지 5주간 동안 다녀온 일본, 한국 자유 여행 후기를 여기로 옮겨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