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여행

쿠바(산티아고 데 쿠바 4)

세울림(케니지) 2022. 11. 8. 14:02

 

 

윌리엄 가족과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밤 9시에 음악을 들으려고 갔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다시 한번 속으로 "여기는 쿠바 이니까~~~" 를 내뱉는다.

 

 

 

 

밤새 비가 내렸지만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서

산티나고 데 쿠바에서 마지막 밤을 잘 보냈다.

 

오늘은 2022년 10월 2일(일)이다.

카사에서 해주는 아침 식사를 하고 주위 풍경을 다시 한번 바라본다.

 

 

 

 

 

 

아침 식사를 마치니 산티아고 가이드인 미구엘이 와서 우리를 기다린다.

마켓 앞에는 물건을 사려는 현지인들의 길게 늘어선 줄이 보인다.

마켓 안에는 물건이 별로 없어서 공무원이 한 사람씩 들여보낸다.

 

그러다가 전기가 나가면 물건 구매는 더 이상 할수 없게 된다.

그 이유는 결재는 오직 카드로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카디 뮤지엄 앞을 지나가지만 안에는 들어가지 않기로 하였다.

지금은 바카디 공장이 문을 닫아 놓은 상태라서 공장과 뮤지엄

두 개를 다 보면 모를까 이 것 하나만으로는 좀 부족할 것 같아서 스킵을 한다.

 

 

 

 

나는 여행 중에도 주일날이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현지 교회를 찾는다.

 

 

 

 

 

현지인 교회에 들어가서 주일 예배를 잠시 드렸다.

 

 

 

 

카톨릭 교회에 비해서 개신교 교회는 쿠바에서 아직은 열세하게 보인다.

 

 

 

 

지나가다가 다른 마켓을 보는데 여기도 사람들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쇼핑할 수 있는 가게들이 모여 있는 장소인데 분위기는 아직 썰렁한 편이다.

 

 

 

 

더 지나가다 거리에서 피아노 건반 장식물을 발견한다.

 

 

 

 

그 옆에는 남녀가 서로 부둥켜안고 진하게 사랑하는 모습의 동상이 서있다.

 

쿠바의 음악에 오늘도 매료되어 오늘 밤  산티아고 데 쿠바를 떠나기 전에 

다시 한번 크게 쿠바 음악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음의 끝자락에 서서 저음과 고음의 만남을 가져본다.

 

 

 

 

아내는 쿠바에 와서도 우체국을 만나면 반사적인 행동을 한다.

 

 

 

 

먹을 것을 사는 가게 앞에도 줄은 이렇게 늘어서 있다.

 

 

 

 

영어 배우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모여라~~~

 

 

 

 

씨엔푸에고스의 동상을 여기에서도 만난다.

 

 

 

 

피델 카스트로 사진은 여기에서 더욱 힘 있게 보인다.

 

 

 

 

혁명, 혁명....  오로지 혁명뿐이다.

 

 

 

 

혁명 정부는 임산부들을 위해서는 국가가 무상 지원을 해준다.

 

그러나 현재 쿠바의 의사들은 거의 다 외국으로 나가서 직업을

구한다고 한다. 의사가 없고 약이 없는 혁명 정부가 인민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의료 행위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

 

그래서 2021년에는 쿠바 반정부 시위가 대단위로 열렸다고 한다.

만약 반정부 시위를 하다가 검거되면 25년 형을 받게 된다고 들었다.

 

현재 쿠바의 젊은이들 중에서는 기성세대처럼 피델 카스트로체 게바라

무턱 해고 좋아하지만은  않는다고 한다. 정부가 만들어놓은 영웅은 자신의

영웅이 아니라고 겉으로 대놓고 표현은 하지 못하지만 속으로 표현하고 있다.

 

 

 

 

산티아고 데 쿠바가 피델 카스트로의 고향이니 그를 사랑하는 표시는 여기에 널려있다.

 

 

 

 

몬카다 병영 앞으로 왔다. 건물에는 그 당시 총탄 흔적이 보인다.

 

1953년 7월 26일, 피델 카스트로가 몬카다 병영을 습격함으로

쿠바 혁명 (1953년 7월 26일 ~ 1959년 1월 1일)은  시작되었다.

 

 

 

 

그런데 공사 중이라서 안으로 입장을 할 수가 없다.

하는 수없이 몬카다 병영 주위만 볼 수밖에 없다.

 

 

 

 

그 주위에는 예전에 중국인들이 많이 거주하였지만 지금은 모두 떠나가버렸다.

 

 

 

 

정면이 잘 보이는 장소를 찾아서 간다.

 

 

– 몬카다 병영 습격 사건

 

카스트로는 1953년 7월 26일, 쿠바 제2의 도시인 산티아고에서 무장봉기해 몬카다 경찰서를

습격했으나 실패해 잡히고 말았다. 당시 바티스타 정권은 군인 1명이 사망하고 게릴라 10명의 총살로 보복했다.

그런데 마침 카스트로를 생포한 군 수색대장이 초등학교 동창생이었다. 인맥의 중요성으로 카스트로는 덕분에

즉결처분은 면할 수 있었다. 법정에서 15년형을 선고받은 카스트로는 “너희들이 현재 온갖 더러운 모함으로

나를 더럽혀도 그것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것도 아니며,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하리라.”라고 말하는 당당함을 보였다.

 

 

 

 

쿠바 혁명의 시발점은 일반적으로 1953년 7월 26일로 인정된다.

이 날은 160명의 경무장한 일군의 반란군이 산티아고에 있는

몬카다 병영과 바야모의 병영을 습격한 날이다.

이때 죽은 반란군의 정확한 수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카스트로는 자서전에서 다섯 명이 싸우다

죽었으며 나중에 바티스타 정권이 56명을 죽였다고 주장한다.

 

사망자 중에는 몬카다 병영 습격 작전의 부사령관인 아벨 산타마리아도

있는데 그는 투옥되어 고문당한 뒤 습격 당일 처형되었다.

살아남은 피델 카스트로와 라울 카스트로는 즉시 생포되었다.

재판 중 피델 카스트로는 4시간 가까이 자신을 변호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로 끝맺었다.

 

“나를 벌하라, 그건 중요하지 않다. 다만 역사가 나를 용서할 것이다.”

 

피델 카스트로는 피노스 섬에 있는 프레시디오 모델로 감옥에서

15년 징역을 선고받았으며, 라울은 13년형을 받았다.

 

1955년 광범위한 정치 탄압 속에서 바티스타 정권은 몬카다 병영을 습격한

쿠바의 모든 정치범들을 석방했다. 피델의 예수회 선생들과 그리고 젊은 시절의

지인들도 바티스타 정권을 설득하여 카스트로 형제를 석방자에 포함하는 데 일조했다.

 

카스트로 형제는 정권을 뒤엎기 위해 혁명을 준비하고자 멕시코로 가는 망명자들과

합류하였으며 스페인 내전 당시 공화국군 지도자였던 알베르토 바요의 훈련을 받았다.

이때 피델은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를 만나 군대를 규합했다.

 

1956년 11월 피델이 이끄는 망명자들은 요트 그란마 호를 타고 쿠바로 간다.

당초 상륙과 동시에 7월 26일단의 야노 사람들과 공조하여 도시에서 반란과

총파업을 일으킬 계획이었으나 실패하고 다음을 도모하여야 했다.

 

 

 

 

몬카다 병영(Cuartel Moncada)은 전체가 이렇게 생겼다.

 

 

 

 

간혹 고층 빌딩이 보이지만 요즘같이 전기 공급이 자주 중단되면 곤란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몬카다 병영 투어는 마침표를 찍기로 한다.

 

 

 

 

지나가면서 또 다른 쿠바 영웅들의 모습을 노는 쿠바 아이도 넣어서 보고 간다.

 

 

 

 

발길을 산티아고 관광 1번지로 옮겨가기로 한다.

 

 

 

 

비 오는 산티아고 거리는 꽤 낭만적으로 보인다.

 

 

 

 

우리를 보고 만물상 주인은 올라와서 보고 가란다.

그러나 이내 빗줄기가 세차게 뿌려서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산티아고 가이드인 미구엘은 우리를 급하게 어떤 가게로 데리고 간다.

가게 안에는 쿠바 관광 명소의 사진이 이렇게 벽에 붙어있다.

 

 

 

 

이 식당에서 미구엘의 아내는 세프 일을 하고 있다.

우리에게 아내를 소개하고 음식도 팔아줄 요량으로

이 가게를 찾은 미구엘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어제 찾은 "La Trovita"에 다시 찾아왔다.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서인지 제일 젊은 사람 혼자만 있다.

 

 

 

 

어제 만난 유명 음악인 사진을 발견하였다.

 

 

 

 

"La Casa de la Trova"라는 간판이 주방 쪽에 보인다.

 

 

 

 

예전에는 오케스트라 활동도 여기서 한 흔적이 보인다.

 

 

 

 

무대 위에 있는 이 의자에는 그냥 아무나 앉을 수가 없고

산티아고 데 쿠바의 유명 음악인 만이 앉을수 있는 의자이다.

 

 

 

 

그러나 감히 내가 이 의자에 앉을수 있었다.

그건 순전히 손님이 아직 여기에 없고 젊은 음악인이 나를 배려해서이다.

 

 

 

 

그 댓가로 나는 모히토를 대접하였다.

 

 

 

 

그는 순전히 우리만을 위한 라이브 음악을 30분가량 들려주었다.

 

특히 자신의 자작곡을 계속해서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그러는 사이 멋쟁이 고수 할아버지가 들어와서 그분에게도

나는 모히토 한 잔을 대접하였다.

 

 

 

https://youtu.be/6y76A26X_9E

 

그의 자작곡 중에서 한 곡을 함께 들어 보기로 하겠다.

쿠바 전통음악을 앞으로 이끌어 갈 차세대 음악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맙다는 인사를 서로 주고받는다.

 

 

 

 

멋쟁이 고수 할아버지와도 사진 촬영을 하였다.

 

 

 

 

산티아고 데 쿠바는 쿠바 대중음악의 본산지이다.

 

여기서 나와서 밴드 음악을 이번에는 들어 보기로 한다.

 

 

 

 

거리로 흘러나오는 밴드 음악 소리를 찾아서 이 장소로 왔다.

4인조로 결성된 이 밴드는 유니폼을 입고 그런대로 프로다운 면모를 보인다.

 

 

 

 

건물 뒤편에는 Artex라는 글귀가 보인다.

 

 

 

 

건물주인은 쿠바 정부의 도움을 받고 있는 듯한 느낌이든다.

 

 

 

 

혁명가의 사진은 물론이고 쿠바 국가인 듯 보이는 악보와 쿠바의 새도 그림에 있다.

 

 

 

 

그러나 연주를 하는 밴드 멤버는 전혀 그런 느낌이 아니고 순수 그 자체이다.

 

 

 

https://youtu.be/071TRIVM4Jw

 

전편에서도 소개하였지만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대표곡인 

찬찬(Chan Chan)을 산티아고 데 쿠바 음악인의 라이브로 들으면 어떤 느낌일까?

 

그래서 여기에 감히 소개를 한다. 꼼빠이 세군도는 산티아고의 자랑이다.

 

 

 

 

이들 역시 우리를 향해서 혼신을 다하는 연주를 들려주고  

잠시 휴식시간을 밴드는 가지기를 원한다.

아내 옆에 기타를 든 사람이 오늘 60세 생일이라고 한다.

 

나는 우리를 위해서 혼신을 다하는 연주가 고맙고 60세 생일을 축하하는 차원에서 

마실 것을 대접하겠다고 하니 쿠바가 자랑하는 사탕수수로 만든 술인 럼(RUM)을 원한다.

 

그래서 미구엘을 통해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구매하여 전달하였다.

 

 

 

 

그리고 이 사람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보컬을 담당한 

이브라힘 페레르(Ibrahim Ferrer)와는 사촌 관계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이브라힘 페레르는 바로 이 사람이다.

그러고 보니 생긴 모습과 노래할 때 목소리도 

좀 닮은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무튼 여기에서 

쿠바가 자랑하는 전설 가족을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독일에서 혼자 여행을 온 여행객이 우리와 합류하여 함께 즐긴다.

 

 

 

https://youtu.be/ignpLCovu7w

 

조금 전 만난 젊은 음악인도 여기에 합류하였다. 또한 덩치 큰 그들 친구도 

이 자리에 합류하여 내가 신청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음반에서

이브라힘 페레르가 부른 칸델라(Candela)를 나에게 들려준다.

 

칸델라는 "불이야"라는 뜻으로 남녀가 사랑 행위를 하는 것을

불에 비유한 노래이다. 그래서 소방차 사이렌 소리를(?) 처음에 들을 수 있다.

 

 

 

 

모두 한 자리에 모여서 기념사진을 멋지게 남기기로 한다.

 

내가 산티아고 데 쿠바를 찾은 이유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둔 것은

쿠바의 대중음악인 쏜(SON)을 그 현장에서 직접 접해보기 위함이었는데 

그런 음악적인 만남을 예상했던 것보다 더 과하게 대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

 

 

 

 

그 마지막 현장은 바로 "Patio Artex" 이 장소이다.

 

이제는 쿠바에서 삼은 아들 윌리엄 집으로 가서 커피를 또 마시련다.

그리고 다시 비를 맞으면서 가다가 또 다른 음악 소리에 내 귀가 반응을 한다.

 

 

 

 

그 소리의 현장을 윌리엄 아들을 앞장 세워 찾아서 간다.

아주 낡은 피아노를 가운데 두고 부르는 소리가 내 심장을 멎게 만든다.

 

 

 

 

나는 윌리엄 아들에게 부탁을 해서 여기 촬영 허락 받기를 청했다.

 

 

 

 

지휘자는 흔꽤히 허락을 하여 나는 360도 방향으로 다니며 촬영을 하였다.

 

여행을 하다 보면 특히 유럽 여행에서 음악을 만나는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모짜르트, 체코 프라하에서도 클래식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많다.

 

그런데 여행지에서 만나는 음악은 너무 상업적인 음악만을 연주해서 곧 실망을 하게 된다.

그러나 상업적인 여행지가 아닌 유럽의 소도시에서 만나는 음악은  간혹 내 귀를 우아하게 만든다.

 

 

 

 

여기는 유럽이 아닌 중남미 지역인 쿠바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잘 다듬어진

아름다운 합창 소리를 그것도 무반주인 아카펠라로 만든다는 것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그래서 과연 어떤 소리가 나는지 직접 들어보라고 아래에 동영상 3개를 준비하였다.

 

 

 

https://youtu.be/m1AJQfDZGUw

 

 

https://youtu.be/NjX16KaV488

 

https://youtu.be/pAtB87ydtwk

 

이들은 산티아고 데 쿠바 청소년 합창단이다.

 

중간에 지휘자에게 다가가서 잠시 나를 소개하고 아름다운 합창 소리에 

감동하여 고마와서 약간의 격려금을 전하면서 대원들과  함께 음류수라도

사 마시라고 하니 대원들의 환호성이 내 귀를 강타한다.

 

 

 

 

그리고 모든 대원들과 함께 서서 기념 촬영을 하였다.

 

 

 

 

잠시 후 지휘자가 나를 자기 방으로 들어오라고 청한다.

그리고 나에게 선물을 하고 싶다고 악보를 내 손에 하나 쥐어준다.

 

 

 

 

그 악보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곡인 '랜들 탐슨'이  작곡한 "알렐루야"이다.

나는 그 순간 무언가에 크게 한 방 얻어 맞은 기분이 들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역시 통하는 그 무엇이 서로에게 있구나...

 

이 곡은 내가 합창 지휘자로 있을 때 연습용으로도 사용하였고 또한

연주회에서 연주곡목으로도 사용한 그런 사랑하는 합창곡이다.

 

쿠바의 실정은 아는 나는 종이가 다 헤어진 귀중한 곡을 감사히

마음으로만 받겠다고 전하고 나는 가지고 있으니 다른 사람에게 주라고 하였다.

 

 

 

 

이 합창단은 2020년 12월 18일에 열린 국제 합창경연대회에서

1등으로 수상한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떠나기 전 지휘자를 중앙에 두고 우리 부부가 함께 서서 

촬영을 하는 아름다운 시간을 다시 한번 가지고 안녕을 고했다.

 

그들의 입과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아직도 나의 가슴에 전해지고 있다.

 

 

 

 

이제는 야간 버스를 이용해서 다음 목적지인 트리니다드로 갈 것이다.

 

 

 

계속 연결해서 다음 쿠바 소식을 올리기로 하겠습니다.

'쿠바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쿠바(트리니다드 2)  (0) 2022.11.16
쿠바(트리니다드 1)  (0) 2022.11.15
쿠바(산티아고 데 쿠바 3)  (0) 2022.11.04
쿠바(산티아고 데 쿠바 2)  (0) 2022.11.03
쿠바(산티아고 데 쿠바 1)  (0) 2022.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