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여행

멕시코 유카탄 반도(멕시코 한인 이민 박물관)

세울림(케니지) 2020. 1. 25. 13:51


멕시코 유카탄 주의 주도인 Merida(메리다)에서 두번째 날을 맞았습니다.


멕시코 여행 떠나기 전부터 나는 메리다에 오면 첫번째로
멕시코 한인 이민사에 관해서 알아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물어 물어서 메리다 한인 이민 박물관을 찾아서 갔습니다.



혹시라도 다음에 찾아갈 사람을 위해서 여기에 뮤지엄 오픈 시간을 알립니다.



도착후에 방명록을 작성 하였습니다.



여기에 계신 분인데 한인 멕시코 이민 3세 이십니다.



전체적인 멕시코 한인 이민 역사의 윤곽을 알수 있도록 이렇게 게시판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아래에 자세하게 시간적으로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멕시코 한인 이민 역사의 시작은 1905년 입니다.
제물포항을 통해서 1033명이 여기로 왔습니다.

그 당시에는 멕시코가 잘살고 스페인의 영향 아래에서
섬유물을 생산할 막대한 노동력이 필요 했습니다.

원주민인 마야인을 노동 인구로 썼어도 노동력은 엄청 더 필요 했던거지요.

그래서 한인 노동자를 계약직으로 하여 여기로 이민을 오게 하였다고 합니다.

1910년은 한국과 멕시코 두 나라에 역사적인 사건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한일합방을 통해서 한국은 국적을 잃었고 멕시코 혁명은
계약직으로 온 한인들의 신분증을 빼앗아 갔다고 합니다.

졸지에 나라를 잃은 한인 노동자들은 올데 갈데 없어져서
노동자로 이민 온지 4년 만에 각자 따로 따로 뿔뿔히 흩어졌다고 합니다.



1945년 한국이 해방 되었어도 이미 돌아갈데가 없는 국적이 없어진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이름을 현지인 이름으로 바꾸고 여기에 남아서
생존을 위한 치열한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 전에 쿠바로 많은 한인들은 이미 떠났다고 합니다.


그 후 1962년에 한국, 멕시코가 수교가 되어서
지금까지 두 나라가 관계를 유지를 하고 있습니다.



이상이 여기서 전해들은 멕시코 한인 이민 역사 이야기이고
지금 그 기록을 여기에 전시해 놓고 있습니다.



당시 1905년에 처음 온 분들의 이름인데 한국 이름보다는
멕시코 또는 마야인 이름이 대부분 입니다.



이렇게 가르시야씨가 열심히 우리에게 자세히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1905년 당시 한국의 모습을 그 분들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보는 사람이 쉽게 이해 할수 있도록 사진 아래에 자세히
부연 설명을 해 놓아서 내용을 이해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 당시 제물포 항에서 여기로 타고온 선박 입니다.



애니깽 현장 모습도 사진으로 볼수 있습니다.



힘든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도 그들은 떠나온 조국을 절대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조국인 한국은 이미 사라졌고 일본이 그들의 조국이 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진을 통해서 열정적으로 설명을 해 주고 있는 한국인 3세인 "돌로레스 가르시아" 입니다.



여기서 살아가면서 마야인 부인을 얻기도 하고,



마야인 남편을 얻기도 하였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끼리 결혼한 부부도 더러 있습니다.



이 여인의 가족을 사진을 통해서 설명 드리겠습니다.

사진속에 정장을 입은 남자분이 할아버지 라고 합니다.
그 옆에는 마야인 부인이고요. 할아버지 왼쪽에 있는 아이가 이 여인의 아버지입니다.

1905년 당시 할아버지 나이는 46세이고 아버지는 9세때 제물포에서 배를 타고 왔다고 합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성함은 김성원, 김수봉 입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이름을 한국말 정확한 발음으로 전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국말 발음은 아주 서툽니다.



마야인이 그린 벽화입니다. 제물포와 애니깽을 그림으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세가지 언어를 구사 했다고 합니다.
한국어, 마야어, 스페니쉬어를 말입니다.



이 화가의 이름은 Goday OZ로 마야인 입니다.



그 당시 여기 72가와 57가에 살던 한인들은 만나면 제물포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우리는 애니깽 영화가 나온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선인장이 애니깽입니다.



애니깽 선인장을 통해서 이런 밧물 같은 것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비닐과 합성섬유가 생산되어서
애니깽 산업은 역사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여기엔 우리가 지금도 잘아는 찬송가가 있습니다.



이건 흥사단 내용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전시되어 있습니다.




"Dolores Garcia"씨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내내 우리부부의 가슴은 멍해 지고 있었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위대함을 여기서 또 알수 있었고,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신 리승만 박사님에 대한 존경심도 더 가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애니깽 노동자가 당시에 입던 옷과 사용한 기구입니다.



이사진은 세계 2차대전에 참가한 애니깽 후손들입니다.



여기 전시물들입니다.



자랑스런 우리 민족의 영웅들입니다.



여기에는 멕시코 한인 이민 100년사 책자가 있습니다.



작가분인 이자경 선생님은 현재 제가 살고 있는 로스앤젤레스에 거주 하고 계십니다.
우리부부가 알고 있는 분입니다.
여행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 연락을 해서 만나봐야 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책자들을 여기 뮤지엄에 비치해 놓고 있습니다.

한인들은 여기 메리다에는 별로 없고 옆 도시인 이즈말(Izmal)로
그 당시 많이 옮겨가서 거기엔 한글 학교가 있다는 말을 해주어서
다음 행선지로 가는 중에 Izmal에 가서 한글 한교를 찾아 가볼까 합니다.

여행을 통해서 살아있는 역사를 배운다는 사실은 나에게 너무나 신나는 일입니다.
그리고 여행가로써 이런 사실을 확인 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기도 합니다.



가르시아씨와 기념 촬영을 하였습니다.
가르시아씨는 한인3세이고 현재 5세까지 있습니다.



우리부부도 한인 이민자 이지만 우리는 미국으로 온 이민자라서
그들의 고생을 알수는 없지만 이민자의 애환은 조금 이해할수 있습니다.



한국과 멕시코의 관계를 이번 여행을 통해서 많이 배워 나갑니다.

그리고 한인 5세를 이사말(Izamal) 에서 직접 볼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