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남부 음악여행

내슈빌

세울림(케니지) 2013. 8. 10. 10:55

 

 

뉴 올리언스서 2박, 멤피스서 1박 , 그리고 마지막 내슈빌에서 1박이 미남부 음악여행 방문 세 도시이다.

음악 여행을 마치고는 박선생 내외분이 머무는 아틀란타로 가서 1박을 하고 나면 나는 엘에이로 돌아간다.

 

이제 거의 이번 여행의 종반부다. 사실 먼저 두 도시에서 즐긴 재즈, 리듬 앤 블루스, 락앤롤 음악은 그래도

사전에 좀 즐겼거나 미리 공부를 하고 가서 그런대로 이해가 되었고 즐길수있었다. 그러나 내슈빌의 컨트리

음악은 사실 내가 아는바가 그리 많지 않다. 왜냐하면 별로 선호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기회에 컨트리 음악에 대해서도 조금이나마 알아보기로 하였다.

 

내슈빌편에선 먼저 이색적은 간판을 소개하기로 하겠다.

 

 

 

우리가 머문 KOA 캠핑장 입구에 서있는 멋진 간판이다. "MUSIC CITY" 라는 문구가 이색적이다.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자 마자 그동안 참았던 음악의 한을 먼저 풀어내기로 하였다.

 

이시간을 위해서 갈고 닦은 실력을 마음껏 뽐내는 박선생님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이고

그 분위기를 고조 시키려는 우리들의 단결력이 그 방안의 분위기를 최상으로 업 시켰다.

 

 

이제는 내슈빌에서 광란의 밤을 컨트리 음악으로 끝을 내야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간단히 컨트리 음악이란 미국 농촌에서 살던 백인들의 대중음악으로 동부의 민요로부터 발생한 것을 말한다.

 

웨스턴 음악이란 서부극영화에서 카우보이들이 부르는 음악을 가리킨다. 이 둘을 합쳐 ‘컨트리웨스턴 음악’이라고도 부른다.

 

 

 

그래서 컨트리 음악을 접하려고 찾아나선 장소이다.

 

 

 

찾아간 여기도 MUSIC CITY라는 간판이 크게 붙어있다.

 

 

 

좀 소박하게 시골풍으로 보이는 두 남녀가 컨트리 음악을 연주하는 시간 우리는 들어섰다.

 

 

 

입장하고 얼마 있지 않아서 그들의 스테이지는 끝이났다.

 

이른 시각 첫 스테이지를 장식하는 가수는 아무래도 격이 약간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조용필이 첫 무대에 서는 것을 본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잠시 다음 스테이지 중간 시간을 이용해서 극장식 바를 둘러본다.

 

 

 

여기서 맥주도 한잔 주문 하였다.

 

 

 

유명인들의 사진과 업적이 옆면 가득히 붙어져있다.

 

 

 

무대옆으로 다가가서 조명과 장비 시스템을 눈여겨 봐둔다. 

 

 

 

잠시후 드럼 주자가 먼저 무대에 올라와서 조명과 사운드를 체크한다.

 

여자 리더 싱어가 올라오기전 오프닝으로 남자들이 악주 연주와 함께 컨트리 음악을

노래하는데 이들 각각의 실력이 출중하고 웬만한 그룹의 리더 보칼 정도가 되는 실력자들이다.

 

 

 

그런 내슈빌 사운드 첵업이 다 끝나고 멤버 전원이 다 무대위로 올라가서 연주에 들어간다.

 

 

 

열정적으로 노래하는 여가수의 모습을 잡아보려고 애를 쓰지만 역부족이다. 빛이 부족하다.

 

숙소에서 이곳으로 이동하면서 많은 비로 인하여 내 카메라를 챙기지 못한게 후회스럽다.

 

 

 

조그만 똑딱이 카메라만 비안맞게 주머니에 넣고 왔기때문에 어쩔수없는 사정이 되어버렸다.

 

플래쉬만 사용할수 있었어도 더 좋은 사진을 얻을수 있었는데.....

 

 

 

뒤에 보이는 드럼 주자와 노래부르는 여가수는 서로가 부부라고 한다.

 

 

 

이 컨트리 여가수의 노래하는 모습을 방송용 비디오로 녹음 하는 사람이 뒤에 보인다.

 

무대 첫순서부터 마지막까지 비디오로 녹음을 하고 이것을 로컬 방송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이 여가수는 여기 컨트리 음악계에서 약간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라고 그녀의 매니저가 나에게 알려주었다.

 

 

 

그녀의 매니저와 나는 의기 투합하여 사진 한장을 기념으로 남기기로 하였다.

내 미국 이름이 Kenny Chi 라고 하니 색소폰 부는 흉내를 웃으며 해 보인다.

 

 

 

노래 실력과 섹시미를 모두 갖춘 앞날이 밝은 여가수를 나는 운좋게도 이 바에서 만날수 있었다.

 

 

 

움직임이 덜할때 사진을 찍으니 그런대로 좀 나은듯 보인다.

 

 

 

그러나 절대 몸놀림이 천하게 보이거나 저질스럽지 않고 고상하게 무대를 압도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컨트리 음악에 대하여 매력을 점점 느낄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음악은 고조 되었고 컨트리 음악에 나는 조금씩 더 빠져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시간은 무한정으로 주어지지 않아서 Stand by your man을 끝으로 아쉬움을 달래며 자리를 떠나야했다.

 

 

 

어제 내리던 비는 그치고 다음날 아침 밝은 햇살을 맞았다.

 

 

 

이곳에선 그레이 라인을 타고 오늘은 내슈빌 관광길에 나서기로 하였다.

지나온 두 도시와는 달리 직접 찾아다니지않고 안내를 받는 가이드 투어를 하기로 한 것이다.

 

 

 

친절하고 박식한 가이드의 안내로 내슈빌을 알아보기로 하자....

 

 

 

이것이 우리가 이용한 그레이 라인 관광 버스다.

 

 

 

작업하는 저 사람 크리스마스 장식을 벌써부터 시작한다는 말을 들었다. 오늘이 아직 7월인데 말이다.

 

 

 

내슈빌 시내로 들어선다.

 

내슈빌(Nashville)은 테네시 주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려 살고 있는 최대 도시다.

그러나 내슈빌의 진면모는 미국 최고의 음악 도시라는데 있다. 별명이 ‘뮤직 시티’인데,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뮤직 시티라는 말이 붙은 것은 이곳

대학 흑인 가스펠팀이 영국 여왕 앞에서 노래를 한후 감동한 여왕이 당신들은 뮤직 시티에서

온 사람이라고 말한 것에서 유래하였다는 말을 들었다.

 

 

 

재즈와 컨트리 뮤직 등 모든 장르의 음악을 아우르는 각종 라디오, TV 프로그램 제작이 이 곳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또 음악과 뮤지컬 등에 관한 한 뉴욕 맨해튼에 견줄만한 브로드웨이를 갖고 있는 도시가 바로 내슈빌이다. 약간 과장하면,

일년 내내 음악 축제가 끊이지 않는다. 아마 뮤직 클럽과 바의 숫자도 도시 주민 숫자 대비로 미국 최고 수준일 것이다.

 

 

 

내슈빌은 미국 남동부의 많은 대도시들이 퇴색해가는 것과 대비되게, 활력을 유지하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다.

내슈빌의 번영은 여러 조건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미국에는 주에서 가장 큰 도시가 주도가 되는 경우가 많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내슈빌은 테네시 주의 주도이며 동시에 테네시 주에서 가장 큰 광역도시이다. 또 이 지역에서 중요한 컴버랜드 강을

끼고 있고, 동서로 긴 테네시 주의 중부에 위치해 있어 사람들이 오고가기가 쉽다.

 

 

 

내슈빌은 1970년대 이후 급격한 팽창을 거듭했는데, 당시 시장의 재개발 프로젝트가 주효했다. 이후 도심에 고층건물들이

빠른 속도로 들어서고,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테네시 주 물류의 중심이며 의료산업 등의 본거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특히 의과대학이 유명한 명문, 밴더빌트 대학(Vanderbilt University)의 명성도 내슈빌의 위상을 한껏 높이는데 큰 몫을 했다.

 

 

 

미국에서 잘 나가는 도시는 프로 운동팀이 활성화되는 특징이 있다. 특히 1998년 프로풋볼팀인 NFL의 테네시 타이탄즈

(Tennessee Titans)가 텍사스의 휴스턴에서 이 곳으로 본거지를 옮겨온 것은 내슈빌의 팽창을 증명하는 예다.

 

 

 

테네시 주의 양대 도시를 구성하는, 라이벌인 멤피스의 인구 중 흑인 비율이 60%가 넘는데 반해, 내쉬빌은 정반대로 백인 인구의

비율이 60%가 넘는다. 멤피스가 고대 이집트의 수도 이름을 따고, 피라미드 아레나(체육관)를 상징물로 삼는데 비해, 내쉬빌은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을 랜드마크로 내세우는 것도 이채롭다. 실물 크기로 본뜬 파르테논 신전은 내쉬빌 시내에 자리한

도시 100주년 기념 공원에 들어서 있다.

 

 

 

이런저런 네슈빌에 관한 설명을 들으면서 우리는 첫번째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가이드는 이곳으로 우리를 안내하였다.

 

 

 

극장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관경이다.

그랜드 올리 오프리 생방송을 진행하는 극장무대다.

 

 

 

한쪽옆에서는 컨트리 음악에 관한 동영상이 진행중이다.

 

 

 

반가운 얼굴이 보인다. For the Good Time의 주인공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이다.

 

 

 

컨트리하면 빼놓을수 없는 사람 자니 캐쉬가 나온다.

 

 

 

자니 캐쉬에 대한 자료를 곳곳에서 더 볼수있다.

 

 

 

앞사진서 본 그랜드 올리 오프리 하우스의 객석수는 위, 아래층 합해서 4천 4백석이 넘는다고 한다.

 

 

 

그랜드 올리 오프리에 대한 역사를 대변하는 자료들이 잘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나는 솔직히 이 그랜드 올리 오프리가 무엇인지를 잘모른다.

그만큼 컨트리 음악과는 거리감이 있다는 증거다. 

 

 

 

이렇줄 알았으면 사전에 미리 컨트리 음악에 대한 공부를 좀 하고 올걸 하며 후회해본다.

 

역시 아는것 만큼 보인다는 여행의 진리를 다시 한번 절실히 깨닫는 순간이다.

 

 

 

컨트리 음악 의상과,

 

 

 

그 음악에 사용한 악기도 전시되어있다.

 

 

 

레코딩 스튜디오를 볼수있다.

 

 

 

유리창 너머로 봐야 하기 때문에 사진상으로는 수튜디오 안 모습을 자세히 표현할수 없다.

 

 

 

이것은 이층 복도에 전시된 전시물이다.

 

 

 

시간대 별로 잘 정리가 되어있다.

 

 

 

이층 가장자리서 극장의 내부를 둘러본다. 작년 유타여행때 솔트 레이크에 있는 몰몽교 성전을 보았던 생각이 난다. 

 

 

 

여기는 실제 방송실이다.

 

 

 

방송실에서 내려 보는 관경이다. 관광객들이 무대를 직접보고 사진 촬영을 할수있게 하였다.

 

 

 

관광객 한명이 무대위에 올랐다.

 

 

 

기타를 들고 서있는 폼이 영락없는 시골풍이다.

 

 

 

이 여인은 이 시간  얼마나 사모하였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누가 보아도 마음씨 넉넉한 컨트리 아줌마가 오늘 용되는 순간이다.

 

 

 

가이드 투어를 하는 사람들은 가이드의 자세한 설명을 듣는다.

 

 

 

줄을 길게 늘어서서 이곳에 입장하려고 기다리는 옛사진이다.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서 셀프 투어를 하면 된다.

 

 

 

나오는 출구쪽에서 본 동상이다. 누구인지는 공부를 하지 않아서 모르겠다.

아마도 이 곳을 만든 창시자가 아닌지 모르겠다. 혹시 아시는분 있으면 댓글에 주시길....

 

 

 

 나는 이층에서 무대를 배경으로  한번 폼을 잡아본다. 살포시 미소를 띠면서...

 

 

 

 

라이만 오디토리움 관광을 끝내고 나와서 잠시 내슈빌 시내 모습을 사진에 담아보았다.

 

 

 

맑고 청아한 날씨 때문인지 건물들이 보기에 너무 깨끗하게 보인다.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동안 차안에서 내슈빌 거리의 풍경들을 담아본다.

 

  

 

 

청운의 꿈을 안고 가타 하나를 들고 등에는 더블백을 멘 사람이 길을 지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컨트리 음악계에서 자신의 꿈을 활짝 펼칠수 있기를 응원 하여본다.

 

 

 

달리는 버스안에서 사진을 담아내기는 역시 힘든 작업이다.

 

 

 

 

 

잠시후 컨트리 음악 명예의 전당 박물관(Country Music Hall of Fame and Museum)에 도착하였다.

이 곳은 컨트리 음악의 역사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든것이라 한다. 역시 백인 동네라 수준이 다르다.

 

본격적인 투어에 앞서서 아래에 컨트리 음악에 대해서 먼저 알아보고 가는 순서를 만들었다.

 

 

컨트리음악이란
 
대중음악의 한 장르인 컨트리음악은 미국 동남부의  애팔레이션 산맥 지역에서 형성된  마운턴 뮤직으로서,

Appalachian Folk(애팔레이션 포크)로  여겨져왔던것이   1920~30대에는 hillbilly로,   1940~50년대에는  

country  western으로 불리다가 1960년대 말에 와서 western이라는 단어는 빠지고 오늘날 Country로 불려지게 되었다.

따라서 country는 곧 Country Music을 의미하게 된다.


(녹음 기술이 탄생하기 전에 애팔레이션 포크로 여겨져 왔던 음악은 1925년에 와서 컨트리 피아니스트 Al Hopkins가

애팔레이션 산맥지역의 전통음악을 녹음하면서  hillbilly music이라는 이름을 붙임으로 해서 그때부터 1930년대까지는

힐빌리로 불려졌다. 그러다가 1930년대  캘리포니아 남부를 중심으로 한 Western Swing과 헐리우드의 서부영화가

흥행함으로써 발달한 Singing Cowboy스타일의 음악이 유행하게 되면서 이들 서부음악과 애팔레이션 산맥지역의

전원음악인 힐빌리를 통칭하여 Country and Western으로 부르게 되었다.
그 후,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초에 등장한 Nashville Sound는 컨트리음악을 수백만 달러의 거대한 산업으로 바꿔어

놓게 되었는데 그 중심은 당연히 내슈빌 이었고 Western Swing과 Singing Cowboy스타일이 시들게 되자 Western이라는

단어는 자연히 빠지게 되어 오늘날과 같은 Country로 불리게 되었다.)
 

 

컨트리음악의 기원

 
컨트리음악은 유럽의 포크음악 그 중에서도 영국 및 그 주변섬들(the British Isles:잉글랜드,스코틀랜드,아일랜드등)

앵글로 셀틱(Anglo-Celtic)계 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신대륙이었던 지금의 미국 땅에

유럽 각지로 부터 많은 이주민들이 들어오면서 그들 몸에 베어있던 전통음악과 곡조(folksongs and ballads) 뿐만 아니라

그들이 즐겨 사용하던 악기도 자연히 유입되게 되었다. 이리하여 아일랜드의 fiddle,이태리의 mandolin,스페인의 guitar

그리고 아프리카의 노예들로부터 banjo가 미국 땅에 들어오게 되었다.


새로운 땅에 여러 종족들이 뒤섞여 살면서 그들의 전통음악들은 혼합되어 독특한 음악형태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컨트리음악의 발상지인 동남부의 애팔레이션 산맥지역(테네시,켄터키,버지니아,캐롤라이나등)에는
영국및 그 주변섬들의

앵글로셀틱계의 많은 이주민들이 정착하게 되었는데,   이들  초기 이주민들의 삶은  결코 쉬운것이 아니었다. 이주민들의

전통음악과 곡조들은,  새로운 땅에서의 고된생활과   멀리 떠나온 고향에 대한 향수,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  미래에 대한 불안,

그에 따른 신에의 귀의와 자연에 대한 동경등의 정서가 그 지역 및  그 시대 사건들에 대한 노래속에 자연 흡수되면서  당연히

새로운 독특한 사운드를 형성하게 되었는데, 이를 애팔레이션포크 또는 힐빌리 라고하며, 오늘날 컨트리음악의 기원으로 보고있다


컨트리음악이 형성될 초기의 무렵에는 직업적 뮤지션은 없었으며,자신이나 가족들 또는 이웃사람들의 행사에서 즐기기 위하여

불리워졌으므로 음악을 보존하겠다는 의식이나 노력도 없었다. 다만 사람들이 좋아했던 노래들은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또한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전래되었을 뿐이었다.구전되었던 그 당시의 컨트리음악들(old time music)에 대하여는 사람들이 그 기원을

잘 몰랐을 뿐만 아니라 가사가 변하기도 하였으며,한 음악에 대한 제목도 "옛날 음악(Old Music)"이라든지 "산의 음악(Mountain Music)"

등으로  정확히 특정되지가 않았다. 이들 초기 컨트리음악은 주로 전원생활의 애환과 신성(sacred)및 신에 대한 찬양을 내용으로 하고

있었으므로 순수,소박,가족적이며 매우 경건한 것을 특징으로 한다.
  

 

컨트리음악의 탄생
 
녹음기술이 계발되면서 테네시주의 Bristol에 있던 레코드사는 상업목적으로 음악을 녹음,판매하기 위하여 각 지역 음악가를

구인하는 광고를 내게 되었는데,그 때까지 취미로 음악을 하였던 지역 음악인들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음악활동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었다.


Victor Records사의 프로듀서 였던 Ralph Peer는 1927년 8월 1일,훗날 컨트리음악의 어머니로 불리는 The Carter Family와

오디션을 거쳐 1곡당 50달러에 녹음계약을 체결하여 다음 날인 8월 2일에 첫 녹음에 들어갔다.  또 컨트리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Jimmie Rodgers와도 8월3일에 역시 1곡당 50달러에 녹음계약을 하고 8월4일날 2곡을 녹음하였다.  훗날의 거대한 컨트리음악

산업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마침내 애팔레이션 산맥지역에 포태되어있던 컨트리음악은  세상밖으로 탄생 하게 되었다.

 
그리고 1920년대 부터 그랜드 올 오프리 같은  방송무대가 생기면서 컨트리음악은 한편으로는 라이브 공연과 방송으로 또 한편으로는

음반의 보급으로 획기적이고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된다.


(물론 5년 전인 1922년부터 다른 아티스트들에 의한 녹음이 있긴 하였지만 일반적인 견해는 카터 페밀리와 지미 로저스가

Victor레코드사와 녹음계약을 한 1927년 8월을 컨트리음악의 탄생 시점으로로 보고 있으며1998년 미국의회는  컨트리음악의

탄생지("Birthplace of Country Music")가 Bristol(테네시,버지니아의 경계선에 있는 twin city)이라는 결의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인  

 

 

 

컨트리 음악의 역사를 직접 눈으로 확인 하는 첫 발걸음을 떼어본다.

 

 

 

2014년도 행사를 알리는 포스터가 눈에 보인다.

 

 

 

1928년이면 거의 컨트리 음악의 시작 단계라고 할수있다.

 

 

 

밑창이 다 닿아버린 역사의 구두가 전시되어있다.

 

 

 

LP판이 보인다. 지금은 역사의 현장에서 소멸되는 것 처럼 보이지만 아직 메니아들은

이 레코트판을 고집하는 이들도 있다. 나도 한때는 LP판에 미친적이 있었다. 아마 그때

나의 음악성이 만들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컨트리 음악 뿌리 라는 큰 제목이 붙어있다.

 

 

 

이렇게 음악의 역사와 기원을 잘 소개하였다.

 

 

 

 

 

 

그 당시 악보도 전시되어있다.

 

 

 

 

청교도로 시작한 나라가 말하듯 역시 기독교가 음악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오 수잔나라는 눈에 익는 문구도 보인다. 주위에선 오 수잔나 음악이 울려퍼진다.

 

 

 

 

이런식으로 전시한 것들을 하나하나 볼수있게 만들어 놓았다.

 

 

 

마음에 드는 의상도 있다.

 

 

 

헐리우드 라는 글이 보인다.

 

 

 

 

 

내슈빌 사운드 라는 글을 보면서 역시 컨트리 음악을 대표하는 도시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세칸 짜리 기타는 생전 처음 보는것이다.

 

 

 

 

엘비스가 여기에도 등장한다.

 

 

 

 

 

금으로 만든 엘비스 프리슬리 피아노는 보는이에게 놀라움을 안겨준다.

 

 

 

잠시 쉼을 가지려고 자리에 앉아서 동영상 공연을 관람한다.

 

 

 

 

그 당시 레코딩때 사용한 믹싱 기계다.

 

 

 

잘 알지 못했던 악기를 여기서 만나게 된다.

 

 

 

 

컨트리 계의 대부들을 여기서 만나본다. 모두가 백인 일색이다.

앞서 본 두 도시와는 정말 분위기가 다름을 알수있다.

 

오래전 나는 LADY 를 부른 턱수염 아저씨 케니 로저스 공연을 보러 간적이 있었다.

그때 백인 여자들이 그를 향하여 보낸 눈빛과 표정을 본적이 있다. 상상 이상 이었다.

컨트리 음악은 내가 상상하는 것과는 다르게 많은 백인들에게 호평을 받는다.

 

마치 나훈아와 이미자가  한국 중장년층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듯이.... 

 

 

 

 

입어보고 싶은 충동이 나는 멋진 의상이다.

 

 

 

 

 

 

레코드 판을 전시한 것만 보아도 컨트리 음악이 미국인에서 끼친 막강한 영향력을 알수있다.

 

 

 

 

 

컨트리 음악은 그 당시 레코딩을  할수 있어서 대중화가 빨리 되었다는 사실을 알수있다.

 

 

 

 

 

역사적인 루트 66번이 동에서 서로 문화를 전달할수있는 통로 역할을 하였다.

 

 

 

서쪽의 헐리웃이 꿈이 현실로 되어가는 것을 알수있다.

 

 

 

 

의상이 정말 칼러풀하다.

 

 

 

 

이 루트 66번 여행을 나는 미국 여행의 마지막 코스로 삼으려고  꿈꾸고있다.

 

 

 

음악으로 동서가 하나가 된 것 처럼 느껴진다.

 

 

 

현재 최고의 컨트리 음악 스타는 이들이 아닌가 여겨진다.

 

 

 

 

투어를 끝내고 아래로 내려왔다.

 

 

 

 

장시간에 걸처서 본 곳은 컨트리 음악 명예의 전당 박물관(Country Music Hall of Fame and Museum)이다.

앞서도 말한 것처럼 이 곳은 컨트리 음악의 역사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든 장소이다.

 

 

 

 

 

나는 아내와 나란히 서서 기념 촬영을 하여본다.

 

 

 

 

이젠 우리도 기다리는 차로 발걸음을  옮겨가야한다.

 

 

 

내슈빌에 오면 꼭 봐야할 장소라서 주소를 알린다.

 

 

 

다시 차에 올라탔다.  그런데 앞에 보이는 시내 버스는 내슈빌에서 이용시 공짜라고 한다.

부자 도시임에 틀림없다. 백인의 산물이랄수있는 컨트리 음악이 흑인 음악이라는 재즈나

블루스보다는 경제적인 면에서 한수 위인듯 하다.

 

그리고 사실 뉴 올리언스, 멤피스 보다는 내슈빌이 확연히 부티가 나게 느껴지는 도시이다.

 

 

 

그리고 관광객들도 거의가 백인들이다.

 

 

 

 

눈에 들어오는 이것을 급하게 카메라로 들이대었다.

 

 

 

맛있는 점심식사를 하러 갔는데 저녁에만 문을 연다고하여 발길을 돌린 곳이다.

요리가 엄청 맛있다는 정보를 듣고 찾아간 곳인데 아쉬운 마음으로 발걸움을 돌리고 다음을 기약한다.

 

 

 

숙소로 돌아와서 이제는 정말 이 음악 여행을 끝내야 할 시간이 다가옴을 아쉬워한다.

 

 

 

 

 

 

 

그래도 아쉬움을 달래려고  내슈빌 컨트리 스타일의 식당을 찾아 들어가서 늦은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또다시 차를 몰아 아틀란타에 밤늦게 도착하여 박선생님 따님이 차려준 위의 맛난 저녁을 먹을수 있었다.

 

 

이렇게 나는 미남부 음악여행을 세도시(뉴 올리언스, 멤피스, 내슈빌)에 걸쳐서 하게 되었다.

그동안 나에겐 꿈으로만 그려오던 음악여행이라서 더욱 가치 있는 여행이 아닌가 생각한다.

 

자고 내일 일어나면 나는 내가 사는 엘에이로 가야한다. 그러나 가기전 이 곳 아틀란타에 있는

명소를 돌아보고 가려고한다. 과연 어디를 갈수있을지는 내일 결정을 할것이다.

 

 

 

계속해서 보너스로 보는 아틀란타 편이 음악 여행의 마지막편을 장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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