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남부 음악여행

멤피스

세울림(케니지) 2013. 8. 7. 15:59

 

 

뉴 올리언스를 출발하면서 프리져베이션 홀에서 구입한 시디를 들어보기로 하였다.

감미로운 재즈의 선율이 나의 귀와 마음을 때리는 것을 느꼈다. 그 시디에는 어제밤 첫번째로

나의 닭살을 돋게한 "죄짐 맡은 우리 구주" 가 수록 되어 있었다. 아마도 그 찬송을 앞으로

나는 더 좋아할 것 같은 예감이 팍팍들었다. 

 

루지아나주를 운전하며 지나고 테네시주가 점점 더 가까워 오면서 나는 듣는 시디의 내용물을

바꿔 나가기로 하였다. 여행 준비물중 나는 시디 12개를 빠트리지 않았다. 재즈를 뒤로하고 이번엔

패티 페이지의 테네시 왈츠를 듣기로 하였다. 거기엔 우리 귀에 익숙한 팝송이 함께 수록 되어있다.

 

다음에 들은 음악은 무려 3개의 시디를 한꺼번에 준비해 간 한가수의 노래다.

 

 

 

그 가수는 다름아닌 엘비스 프레슬리이다.

 

멤피스하면 첫번째 떠오르는 단어가 엘비스 프레슬리이고 두번째는 블루스이다.

이건 순전히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다. 이번 미남부 음악 여행을 준비하면서 재즈, 블루스,

락앤록, 컨트리 음악에 대하여 몰랐던 것을 알고 싶은 욕망이 강하게 일었다. 미국에와서

늦은 나이(거의 40의 나이)에 음악 공부를 시작 하면서 과거 청소년기에 알았던 음악의 기억을 떠올려보지만

합창음악을 전공한 나에게는 그 기억이 오래 머물리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은 평생을 배워야 하나보다.

 

그러는동안 차는 어드덧 멤피스로 들어가고 있었다.

 

 

 

고대 이집트의 수도 이름을 그대로 딴 멤피스(Memphis)는 테네시 주에서 도시 자체의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다.

그러나 광역권으로 치면, 테네시에서 내슈빌(Nashville)에 이어 두 번째다.

 

멤피스는 이집트의 고대 수도인 오리지널 멤피스 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가진 곳이다. 고고학 증거에 따르면, 최소한

1만년 전부터 북미 원주민들이 이 곳에 터를 잡고 살았었다. 멤피스는 거대한 미시시피 강을 끼고 있는 언덕 지형에 자리하고 있다.

사방이 훤히 트인 강 언덕이라는 뛰어난 입지 조건은 삶을 풍요롭게 했을 것이다.

 

 

 

고대 이집트의 멤피스가 나일 강을 끼고 있었다면, 테네시의 멤피스는 미시시피 강과 함께 발전한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한복판을 가르며, 대략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미시시피 강을 끼고 있는 도시 가운데는 지금도 가장 규모가 큰 편이다.

 

멤피스는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목화와 목재의 유통 중심지였다. 멤피스가 19세기 중반 미국 최초의 동서횡단 철도의 서쪽

기점이었다는 사실은 한 때 이 도시의 영화를 웅변한다. 당시 동서횡단 철도의 동쪽 기점은 남북전쟁 이전 미국 최대의

노예무역항이었던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의 찰스턴이었다.

 

 

오늘날 멤피스는 도시 전체가 스러져, 낡게 바래가는 미국 남동부 지역의 옛 시절 분위기를 떠올리게 하는 박물관과도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다. 실제로 이런저런 박물관들이 많은데, 그 가운데 목화 박물관과 국가인권박물관은 꼭 들러볼 만한 하다.

 

국가인권박물관이 멤피스에 자리하게 된 것은 미국 소수계 인권의 횃불을 높이 치켜들었던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암살된 곳이

바로 멤피스 시내의 로레인 모텔(Lorraine Motel)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도시 인구의 60% 이상이 흑인일 정도로 비중이 절대적이다. 과거 노예무역의 중심지로 흑인 인구 유입이 많았던 게

오늘날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멤피스는 미국의 대도시들 가운데 범죄 발생이 많은 곳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는 있지만 문화적으로 둘도 없을 정도로 풍요한 도시이다.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쟈니 캐쉬(Johnny Cash)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음악가들이 이 곳을 거쳐갔다. 미시시피 강 언덕에 자리한 ‘음악의 도시’라는 별명이 전혀 허사가 아니다.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건물과 장소들이 많지만, 이집트의 피라미드 형태를 하고 있는 미시시피 강 근처의 피라미드 체육관은

그 자체가 볼 거리이기도 하다.

 

 

 

멤피스는 뚜렷한 네 계절을 가지고 있다. 여름(5월 말 ~ 9월 말)의 온도는 20 °C (68 °F) ~ 35 °C (95 °F)이며 습한 편이다.

뚜렸하다는 말은 다소 무리가 있다. 여름이라고 느껴지기 시작하는 날씨는 4월 말부터 시작되며, 보통은 10월 말까지도 덥다.

비교적 습하고 더운 날씨이며, 여름이 무척 길고 겨울이 짧다. 눈은 겨울에 한차례 정도 오기도 하고 안오는 해도 있다.

2008년 3월에는 이례적으로 무척 많은 양의 눈이 내리기도 했다.

 

 

 

먼저 숙소로가서 짐을풀고 멤피스 시내로 나와서 자동차를 주차하고 걸어서 핵심 장소로 이동한다.

 

 

 

멤피스(Memphis)라는 간판이 보인다.  블루스의 본고장이다.

 

블루스(Blues)는 미국 흑인들의 세속 민속음을 말한다. 20세기초 미국 남부 흑인들이 부르기

시작했으며 단순하면서도 표현적인 형식으로 1960년대 미국 대중 음악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블루스에는 후렴에서 부름과 응답 형식으로 반복하는 형식의 본래 성악 음악이다. 블루스 노래는 이야기의 줄거리보다는

주로 사랑 때문에 느끼는 슬픔이나 애수 따위의 감정을 표현한다. 블루스는 연주자들이 이러한 느낌들을 음악적으로

잘 표현하기 위해 멜리스마, 당김음과 같은 성악 기법이나 기타줄을 목쪽으로 구부려서 연주하거나 금속판이나 유리병을

기타줄에 대는 '초킹'(choking) 연주기법으로 흐느끼는 듯한 소리를 내는 기악 기법도 쓴다.

 

 

 

블루스의 기원에 대해서는 제대로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남북전쟁 뒤 미국 남부에서 발전했으며 노동요와 카우보이 노래,

민스트럴 쇼(백인이 흑인으로 분장하여 흑인생활을 희화한 코미디풍 대중 연예) 음악, 래그타임, 교회 음악, 백인 민요와

대중음악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블루스는 남부의 흑인에게서 나왔고 또 그들이 주로 불렀는데 그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했다. 블루스라는 말이 처음 쓰이기

시작한 것은 1890년대와 1900년초이며 1912년에는 흑인밴드의 리더였던 W. C. 핸디의 〈멤피스 블루스 Memphis Blues〉가

출판되었다. 이 곡은 매우 인기가 있었고, 그뒤 틴 팬 앨리의 많은 노래들이 블루스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골풍의 블루스는 주로 남부에 위치한 조지아와 캐롤라이나, 텍사스, 미시시피 델타 지역에서 발전했다.

 

 

 

조지아와 캐롤라이나 지방의 블루스는 발음이 정확하고 리듬이 규칙적이며 래그타임과 백인 민속음악의 영향을 받아

텍사스나 미시시피의 블루스에 비해 좀더 선율적이다. 블라인드 윌리 맥텔과 블라인드 보이 풀러가 이 양식의 대표자였다.

 

 

 

 

텍사스 블루스는 높은 음과 맑은 소리의 창법, 유연한 기타 반주가 두드러지는데 기타는 화음 단위로 동시에 짚어 연주하는게

아니라 한 줄씩 뜯어서 아르페지오로 연주하는 것이 보통이다. 텍사스 블루스의 가장 대표적인 가수는 블라인드 레먼 제퍼슨이다

 

 

 

미시시피 델타 지역의 블루스는 3가지 양식 중 가장 강렬한 소리를 가지고 있으며, 영향력도 가장 컸다. 이 지방의

블루스는 말하는 듯한 창법으로 부르며 기타 반주는 채 또는 글라스튜브를 써서 슬라이드(한 음 한 음 뜯지 않고

미끄러지듯이 연주하는 기법) 주법으로 연주하며 타악기와 같은 느낌을 주고 변화가 많았다.

 

미시시피 양식의 대표적 인물로는 찰리 패턴, 윌리 브라운, 에디 '선' 하우스, 로버트 존슨 , 자니 샤인스를 들 수 있다.

블루스를 맨 처음 녹음한 사람은 1920년대 매미 스미스, 마 레이니, 아이다 콕스, 베시 스미스 같은 흑인 여성들이다.

이들은 무대 위에서 재즈 악단의 반주로 노래 부르는 가수들이었으며 이들의 음악 양식은 블루스의 고전이라 일컬어진다.

 

 

 

대공황과 2번에 걸친 세계대전으로 수백만 명의 흑인들이 남부를 떠나 북부 도시로 이동하게 되자 블루스는 좀더 넓은 지역으로

퍼져나갔고 세련된 도시 환경에 적응하게 되었다. 가사에도 도시풍 주제가 채택되었고, 이에 따라 블루스 악단이 발전하게 되는데

솔로 블루스 가수 이외에도 피아니스트나 하모니카 연주자가 첨가되었고 이어서 베이스와 드럼으로 구성된 리듬 악기 부분이 추가되었다.

 

 

 

전자 기타와 전자 하모니카는 리듬이 풍부하고 감정이 강력하며 휘몰아치는 듯한 소리를 내게 되었다. 블루스가 처음 터전을

잡은 도시는 애틀란타, 멤피스, 세인트 루이스였다. 후커는 디트로이트에 정착했고, 웨스트코스트에서는 아론 '티본(T-Bone)'

워커가 양식을 개발했는데 뒤에 'B. B.' 킹이 발전시켰다.

 

 

 

그러나 도시풍 블루스의 발전에 가장 큰 몫을 한 곳은 시카고였으며 1920, 1930년대에 멤피스 미니, 탬퍼 레드, 빅 빌 브룬지,

존 리 '서니 보이' 윌리엄슨 등은 시카고에서 인기를 누렸던 블루스 가수이다.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머디 워터스 ,

하울링 울프, 엘모어 제임스, 리틀 월터 제이콥스, 오티스 스팬 등을 포함한 새로운 블루스맨 세대로 대체되었다.

 

 

 

 

블루스는 다른 많은 음악 양식에도 영향을 주었다. 블루스와 재즈는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젤리 롤 모턴, 루이 암스트롱 같은

초기 재즈맨들은 블루스의 요소들을 그들의 음악에 받아들였다. 소울 리듬 앤드 블루스 또한 블루스의 조성과 형식들을 분명히

보여준다. 블루스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것은 음악이며 엘비스 프렐슬리와 같은 초기 록 가수들은 종종 블루스 요소를 썼다.

 

롤링 스톤스, 에릭 클랩턴, 존 메욜 같은 1960년대 영국의 록 음악가들은 미키 블룸필드, 폴 버터필드, 올먼 브라더스 밴드 등 미국

록 음악가들과 마찬가지로 블루스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멤피스에가면 꼭 가서 보고 들어 보길 원해서 블루스의 메카라고 할수있는 바로 위의 장소를 배경으로

블루스의 음악적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여행의 콘셉이 "음악 여행" 이라서 이해 해 주시기를....

 

 

 멤피스의 핵심지역은 바로 이 곳 비일 스트리트(Beale street)이다.

 

  

 

이 곳도 마차를 타고 시내 관광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너무 음악 이야기만 고지식하게 길게 나열한것 같아서 좀 미안한 마음에 잠시 쉬어가는 순서를 만들어보았다.

 

 

 

사람과 사람 코너다. (제목: 멤피스의 남과 여는 이렇게 뜨거웠다.) 

 

 

 

 

여인이여 잠시 뒤를 돌아보라~~~

 

 

 

그녀는 미소를 머금고 전화로 부르는 남자에게로 다가간다.

 

 

 

그리곤 간절한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사랑을 부른다.

 

 

 

잠시 후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음악은 계속 흐른다. 블루스에서 한단계 뛰어 넘은 리듬 앤 블루스로 가려고한다.

 

 

 

지겨움을 좀 달랬으니 다시 음악 이야기로 돌아가자~~~  

 

위에서 언급한 리듬양과 블루스군이 이렇게 뜨겁게 만난 것이다....ㅎㅎㅎㅎ

 

 

 

 

리듬 앤 블루스의 제왕이다.

 

리듬 앤 블루스(Rhythm and Blues; 'R&B')는 흑인의 생활 양식에 맞도록 녹음 된 블루스 보컬이나 밴드 연주의 레코드를 총칭한다.

 

나른한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며 가성을 많이 섞어 부르기도 한다. 1940년대 말 ~ 1950년 대 초 블루스가 스윙같은 댄스풍

재즈와 섞여 태어난 흑인음악이다. 블루스보다 댄스비트가 강하고 리듬 멜로디도 대중적이다. 가사도 고단한 삶을 노래하던

블루스와 달리 쾌락적으로 흘렀다. 현대에서 R&B라는 단어는 컨템포러리 알앤비를 뜻하는 단어이기도하다.

 

 

 

또 흑인 연주자들에 의해 미국에서 발전한 각종 음악 양식의 총칭이랄수있다.

 

대부분의 미국 흑인 음악과 마찬가지로 리듬 앤드 블루스의 다양한 양식들은 재즈 리듬, 음의 굴절

(특히 당김음 처리와 반음 내려 연주하는 블루스 화음)과 더불어 유럽의 영향이 한데 섞인 형태를 하고 있다.

이 양식은 미국 남부 시골의 블루스에서 발전한 것으로, 노동요와 노동중의 외침, 기쁨의 노래, 슬픔의 노래,

기타 여러 가지 깊은 정서들이 섞여 있으며, 흑인 교회의 가스펠 음악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리듬 앤드 블루스에 속하는 여러 양식은 3가지의 주된 형식으로 구별할 수 있다. 그중 가장 최초의 형태는 레이스(race)로,

이는 '점프' 악단의 양식이었고 제2차 세계대전 전에 나타나 가장 먼저 사라졌다. 점프 악단은 그 구성원 중 전위적인 연주자들이

당시 실험적인 음악운동으로 듣기는 재미있지만 그에 맞추어 춤추기는 불가능한 비밥(bebop) 재즈에 참여하기 위해 떠난 악단의

나머지 구성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점프 악단은 강한 리듬, 흥분된 독주(특히 색소폰), 샤우트 블루스(shout blues:목소리를 크게

해서 힘차게 노래하는 블루스 창법의 일종)에 가까운 보컬 등을 점차 강조했다. 큰 규모의 점프 악단들은 1950년대초에 대부분 사라졌다.

 

리듬 앤드 블루스의 2번째 양식은 1940년대에 주로 시카고 남부의 바나 클럽에서 생겨났는데, 시카고 블루스라고도 불린다. 무디 워터스,

서니 보이 윌리엄슨, 하울링 울프 등과 같은 연주자로 대변되는 시카고 블루스는 보통 전자 기타, 하모니카, 전자 베이스, 전자 피아노

혹은 전자 오르간, 드럼에 의해 소규모로 편성되었고 큰 소리로 연주했다. 선율과 보컬은 춤에서 비롯된 강력한 리듬의 시골 블루스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가스펠 양식이라 부를 수 있는 3번째 양식은 조금 산만하고 주로 보컬을 위한 것이며, 전체 악단에 의해 반주가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아예 반주가 없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반주 형태가 다양했다. 대개 그룹으로 연주하며, 밀집화음(구성음들의 음정간격이 멀리

떨어지지 않고 촘촘한 화음)을 사용하며 거의 가라앉은 분위기의 느린 템포였다. 교회의 영향이 뚜렷이 나타났고, 리드 싱어가 위 음역을

노래부르고 그 아래로 다른 사람들이 의미 없는 가사 발음으로 화음을 받쳐주거나 리드 싱어의 선창에 대해 응답했다.

 

 

 

1950년대 중반 리듬 앤드 블루스라는 말은 레코드 회사와 악보출판사에 의해 흑인 청중을 위한 음악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되었고,

이전에 통용되던 에보니(ebony) 음악, 세피아(sepia) 음악, 레이스 음악 등의 별칭들은 사라졌다. 이러한 변화는 흑인 음악 시장과

백인 음악 시장의 전통적 구별이 사라졌음을 알리는 표시이기도 했고, 이러한 현상은 록 음악의 출현으로 심화되었다.

 

시카고 블루스 양식은 흑인 청중만을 위한 음악으로서의 배타적 성격이 점차 사라지게 됨에 따라 본래의 활력을 다소 잃기

시작한 반면 가스펠 양식은 좀더 세련되고 상업적인 '솔'(soul) 음악으로 변형되어 폭넓은 지지를 얻게 되었다.

 

 

 

나도 이들과 같이 리듬 앤 블루스가 울려퍼지는 야외 공연장으로 발걸음을 나란히 한다.

 

 

 

아마도 이곳은 펩시 콜라에서 마련한 야외공연장 인가보다. (마지막 편에선 코카 콜라를 보여주려고한다.)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무대위에서는 리듬 앤 블루스 연주자들이 열심을 다하여 연주를 하고있다.

 

 

 

손을 꼭쥐고 서서 보는 얼룩 무늬(?) 커플도 있다.

 

 

 

 

드럼과 건반이 있고....

 

 

 

리더(보이스)와 베이스가 나란히 서서 연주 한다.

 

 

 

건반(키보드)악기 연주자는 이미 음악에 취해 있어 보인다.

 

 

 

싱어의 열정이 가슴에 확 꽂혀온다.

( 이 표정을 보는 순간 갑자기 한국 가수 한사람이 떠오른다. 박인수이고 그의 노래 봄비의 멜로디가 떠오른다.)

 

 

 

이런 관경을 놓일리 없는 나의 아내, 지씨아줌마.. 이번엔 아예 소리까지 넣는 동영상 촬영이다.

 

 

 

 

아직 밤의 열기는 찾아오진 않았지만 이미 공원안은 음악의 열기에 가득 젖어있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인솔을 하다보니 밤과 블루스 음악의 열기에 젖은 멤피스를 놓친게 못내 아쉽다.

 

 

 

흥에 겨워서 몸을 사르는 이가 나타난다.

 

 

 

여인의 손에 들려 있던 맥주 잔이 남자에게로 전달 되었다.

 

 

 

이들도 한뽀뽀 할지 알랑가몰라~~~~ㅎㅎㅎㅎ

 

 

 

뒤를 돌아 보았는데 또 다른 흑인 커플도 리듬 앤 블루스에 심취하였다.

 

밤 늦은 시간까지 머물지 못한게 아쉽지만 숙소가 멀리 떨어져 있고 박선생님

내외분을 다른 장소에있는 숙소까지 모셔다 드려야 해서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뉴 올리언스에 비해선 규모가 많이 작지만 그래도 다른 종류의 음악과 분위기로 인해서 만족을 하기로 하였다.

 

 

 

멤피스 시내서 돌아와서 우리 부부가 묵은 멤피스 KOA 캠핑장 캐빈이다.

 

 

 

그런데 밤새 얼마나 공격을 하던지, 미시시피 강가의 모기와 전쟁을 새벽까지 치루었다.

 

 

 

 안은 덥고 악착같이 덤비는 모기가 기억에 아직 남는다.

 

아침에는 트랙 아메리카 두팀을 여기서 만났다.  모두가 유럽서 온 젊음이들이다.

 

한국 젊은이들도 이런 프로그램에 많이 참가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자~ 이젠 엘비스 프리슬리를 만나러 갈 시간이다.

 

 

 

그레이스랜드, 누가 지었는지 집이름 한번 호화롭게 잘 지어냈다.

 

 

 

그래이스랜드를 보려면 위의 세가지중 한가지를 선택해야한다.

 

우리는 2번째에 있는 37불짜리를 선택하였다.

 

 

 

셔틀 버스를 타려면 먼저 이 곳을 통과해야한다.

 

사진은 의무적으로 찍고 기념 사진을 찾고 안찾는 것은 본인 마음이다.

 

 

 

한 곳을 볼때마다 색깔이 다른 점선의 종이를 한장씩 찢어서 제출해야한다.

 

 

 

첫번째 순서는 셔틀 버스를 타고 가서 엘비스가 살던 집을 구경하는 것이다.

 

 

 

이 곳이 엘비스가 살던 집이다.

 

 

 

엘비스 하면 생각나는 단어는 로큰롤의 황제이다.

 

 

로큰롤(rock 'n' roll)은 1940년대 말부터 1950년대 후반에 생겨 미국에서 발전된 음악장르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블루스,컨트리, 재즈, 가스펠이 혼합된 형태이다. 로큰롤은 1930년대 컨트리와 1920년대 블루스 음반에서 토대를 이루었으나

1950년대까지는 로큰롤이라는 이름이 존재하지 않았다. 애팔래치아 민요와 가스펠의 영향을 받은 재즈 음악을 컨트리와

결합한 로커빌리는 초기의 로큰롤 양식이다.

 

 

엘리스가 생전 살던 집안을 둘러 보면서 황제로 등극한 음악 이야기를 계속 하도록 하자....

 

 

여기 사진은 직접 다 촬영한 것이다.

 

 

"로큰롤(rock and roll)"이라는 말은 현재까지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뜻이 있는데 그 쓰임은 비슷하다.

아메리칸 헤리티지 사전과 메리엄 웹스터 사전 모두 로큰롤을 "록음악"의 동의어로 정의하고 있으나

올워드 닷컴은 그 중 특히 1950년대의 록음악을 가리키고 있다.

 

로큰롤 정의에 대하여 록 음악계에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일반적으로 올워드 닷컴의 정의에 따른다.

 

 

 

1940년대 후반 ~ 1950년대 초반의 초기 로큰롤을 살펴보면 주로 피아노나 색소폰이 리드악기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195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기타를 추가하거나 리드악기를 기타로 대체하는 형태를 띠게 되었다.

 

 

 

엘비스가 살던 집을 안내자의 인도에 따라서 볼수있도록 하였다.

 

 

백비트가 두드러지는 부기우기 블루스 리듬을 기본으로 하며, 후기에는 스네어 드럼이 거의 빠짐없이 포함되었다.

클래식 로큰롤에서는 일반적으로 두 대의 전기기타(리드기타와 리듬기타), 더블베이스(1950년대 중반 이후),

전기베이스 기타, 드럼을 사용하였다.

 

 

 

미소년의 모습이있고  모형으로 보는 집도 아래에 있다.

 

 

엘비스가 태어난 집은 이렇게 생겼다.

 

 

 

식당의 모습이다.

 

 

 

1960년대에 로큰롤은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전세계를 사로잡은 로큰롤의 엄청난 인기는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끼쳤다.

 

 

 

그 당시 이미 여러대의 티비를 놓고 볼수있었다니....

 

 

여성스러움을 엿볼수있다.

 

 

피아노는 기본이고 아래엔 당구대도 있다.

 

 

로큰롤은 단순한 음악양식을 넘어 영화나 텔레비전 등을 통해 라이프스타일과 패션, 사고방식, 언어 등에도 영향을 주었다.

로큰롤은 다양한 하위장르를 만들어냈으나 초기의 백비트와 같은 특징을 가지지는 않는다. 현재는 이 하위장르들을 통칭

"록" 또는 "록음악"이라 부른다. (사실실 미국식 발음은 록이 아니고 롹'ROCK' 이다.)

 

 

 

엘비스 집에 걸려있는 사진이다.

 

 

로큰롤의 기원에 관한 논쟁은 전문가들과 음악학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뜨겁다.

 

 

 

로큰롤의 발생지는 미국 남부지방으로 알려져 있으며, 초기의 주요 로큰롤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지방이다.

이 지방에 살고 있던 유럽 이민자들과 아프리카 노예들의 두 토속적인 음악이 만나면서 로큰롤로 발전하게 되었다.

 

 

 

해방된 노예들과 그 자손들이 멤피스를 비롯하여 북으로는 뉴욕, 디트로이트, 시카고, 클리브랜드, 버팔로와 같은

도심으로 대거 이주하면서 전보다 더 많은 수의 흑인과 백인이 인접하여 살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서로의 음악을

접하며 패션 등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엘비스의 음악적 업적을 볼수있는 곳이다.

 

 

흑인과 백인의 음악이 혼합된 이 장르는 이른바 “문화적 충돌”에 앞장섰던 라디오 방송국들을 통해 레코드판의

발달과 보급을 촉진하였고, 양 인종 모두가 다루던 재즈와 스읭 같은 음악들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1940~1950년대의 원조 로큰롤은 “레이스 뮤직(인종차별의 성격을 띰)”, “힐빌리 음악(후에 리듬 앤 블루스와 컨트리

웨스턴 악으로 불림)”이라 불렸다. 특히 영향을 준 장르는 재즈와 블루스, 부기우기, 컨트리, 포크, 가스펠이었다.

 

 

 

기타와 의상

 

 

 

공연 장면과 그것을 보는 관광객들의 모습

 

 

어떤 음악이 가장 중대한 영향을 끼쳤는가, 그리고 흑인 리듬 앤 블루스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한 이 새로운 음악이

백인 시장 또는 흑백의 새로운 복합 장르 세계에서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는가에 대해 전문가들은 견해를 달리 한다.

 

 

 

한 사람이 남긴 업적이라고 하기엔 너무 커서 입을 다물지 못할 지경이다.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씨가 있어서 이 사진은 탄생하였다.

 

 

1930년대의 재즈에서 특히 스윙은 백인 청중들이 열광했던 첫 흑인음악으로 도시적인 춤곡을 기반으로 한 스윙 밴드와

함께 블루스의 영향을 받은 컨트리 스윙 밴드가 인기를 끌었다. 1940년대에는 재즈 기반에 색소폰 등의 관악기 사용이

늘었고 호소력 짙은 가사  부기우기 비트 등도 눈에 띈다.

 

 

 

러브 미 텐더 의상과 군복이 보인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연료부족 한정된 청중과 연주자들 등의 이유로 규모가 큰 밴드는 수입이 줄어 기타,

베이스기타, 드럼만을 사용하여 밴드의 규모를 축소하는 일이 많았다. 특히 서부 해안과 중서부 지역에서는

기타 리프와 독특한 비트 호소력 있는 가사로 리듬 앤 블루스가 유행하면서 앞으로의 더 큰 발전 가능성을 예고했다.

또한 로큰롤에는 컨트리 부기와 일렉트릭 시카고 블루스의 특색들도 많이 발견되었다.

전기기타와 앰프, 마이크, 45RPM 레코드가 활성화 된 직후 로큰롤은 기술력이 급변하는 시기를 맞이하였다.

 

음반산업 또한 변화를 겪었다. 대중의 입맛에 맞춘 아틀란틱, 선, 체스와 같은 독립레이블들이 늘어났고

라디오에서도 이러한 레이블들의 음악을 자주 틀었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백인 청소년들이 이같은 음악을 들음으로써 로큰롤을 하나의 특정 장르로 정의, 발전을 이끌어냈다.

 

 

 

가수, 배우, 인도주의자라고 해야할까.... 세 가지 요소를 지닌 남자의 이름은 엘비스 프레슬리다.

 

 

진짜 금으로 만든 레코드판이다.

 

 

그 당시 빌보드는 물론이고 캐시 박스도 석권하였다.

 

 

영화 블루 하와이가 기억난다.

 

 

부부가 결혼식때 입은 의상이다.

 

 

가족들 사진이다.

 

 

거의 모든 의상엔 화려한 장식품이 치장되어 있다.

 

 

 

이 모두가 엘비스 한 사람 업적이다. 중간 아래 부분에 그의 얼굴이 보이는가?

 

 

다음은 엘비스가 잠들어 있는 장소로 이동한다.

 

 

 

 

 

먼저 고인이 된 자에게 명복을 빌어본다.

 

 

 

 

 

 

 

이 자리를 뒤로하고 셔틀 버스를 타고 돌아나와서 다른곳으로 이동한다.

 

 

 

자동자를 전시한 장소다.

 

 

 

부인이 타던차

 

 

집차를 비롯해서....

 

 

 

 

엘비스가 타던 화려한 차들을 전시한 곳을 볼수있다.

 

 

다음은 자가용 비행기를 보러간다.

 

 

 

내부를 돌아 볼수 있다.

 

 

 

앞으로 올라가서 내부를 전부 돌아보고 뒷문으로 내리게 되어있다.

 

 

소형 비행기도 보자.

 

 

 

보존 차원에서 비닐로 다 덥어놓았다.

 

 

비행기를 보고 다른 전시관으로 간다.

 

 

 

이 모습을 흉내낸 한국 가수가 있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의 주인공은 남비스 프리슬리였다."

 

 

잠시 앉아서 보면서 쉼도 가질수있다.

 

 

그는 하와이를 비롯해서 수많은 도시를 순회 하였다.

 

 

엘비스 오빠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지씨아줌마.

 

 

그레이스랜드 투어를 마치고 멤피스를 출발하여 우리는 테네시의 다른 음악 도시 내슈빌로 향하였다.

 

 

 

내슈빌에 도착하자마자 숙소로가서 저녁 식사를 하고 바로 음악 연주에 돌입하기로 하였다.

 

 

 

박선생님 색소폰 선율에 맞추어서 노래도 한곡 뽑아본다.

 

 

 

색소폰의 선율은 여행자의 피곤함을 달래기에 충분하였다.

 

 

 

계속된 생음악 연주로 희열을 만끽한뒤 열도 식힐겸 이제는 미국의 컨트리 음악을 접하러 외출하기로 하였다.

 

내슈빌은 미국 컨트리 음악의 본산지라고 알고 있으니 잘은 모르지만 하여튼 이 밤 컨트리 음악에 빠져 보기로하자

 

 

다음편에선 내슈빌과 컨트리 음악에 관하여 포스팅을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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