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블스 타워에서 오후에 출발한 우리 일행은 마운트 러쉬모아를 향해 달려갔다.
이 곳에서 우리 일행 5명은 먼저 자세를 잡고 포즈를 취해본다.(이선생, 지씨부부, 박씨부부 순이다.)
가는길은 와이오밍의 시골 경치를 즐기기 위해서 선덴스(Sundance)에서 585번 남쪽길을 타고
Four Corners지점에서 85번 남쪽으로 다시 길을 바꿔탄후 뉴케슬(Newcastle)을 좀 지나서 16번 동쪽길로
접어들어 사우스 다코다로 진입하였다.
그리고 주얼 케이브를 잠시보고 커스터 시티(Custer City)에서 385번 북쪽으로 올라가다 마운트 러쉬모아로 가는
길인 244번을 타고 마운트 러쉬모아 근처에 위치한 미국서 가장 넓고 좋은 KOA 캠핑장으로 가서 먼저 자리를 잡았다.
매일 저녁 9시에 하는 레이저 쇼를 보기로 하고 일찌감치 저녁 식사를 하고 4명의 위대한 대통령 상으로 달려갔다.
Mount Rushmore National Memorial 이 이곳의 정식 이름이다.
러쉬모어 산(Mount Rushmore)은 미국에 위치한 산으로, 미국의 4명의 위대한 대통령을 조각한 조각상(러시모어 국립 기념공원,
Mount Rushmore National Memorial)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북미 대륙의 한가운데, 사우스 다코타주와 와이오밍주에 걸쳐있는
블랙 힐스라는 산악군이 대평원 속에 우뚝 솟아있다. 러시모어 산은 그 중의 하나이다.
마운트 러쉬모어에는 자연의 위풍과 인간의 집념이 결합되어 이루어진, 미국 역사의 한 페이지가 상징적으로 새겨져 있다.
미국 초대 대통령이고 위대한 민주 국가의 탄생을 위하여 헌신한 조지 워싱턴, 미국의 독립 선언문을 기안했고, 루이지애나
지역을 구입해 국토를 넓힌 토머스 제퍼슨, 남북 전쟁 당시 북군의 승리로 미연방을 살렸고, 모든 인간의 자유를 지킨
에이브러햄 링컨, 그리고 서부의 자연 보호에 공헌이 컸고 파나마 운하 구축 등 미국의 위치를 세계적으로 올려 놓은
시어도어 루즈벨트 등 네 위인의 초상이 산정의 거대한 바위에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로 그 위풍을 과시하고 있다.
조각할 당시엔 다이너마이트로 깎아 내어 못과 망치로 다듬질을 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러시모어 조각상은 무려
14년(1927년~1941년)이란 시간에 걸쳐 만들어졌다.
조각상에 새겨진 4인의 대통령
이렇게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4인의 위대한 미국 대통령의 얼굴이 새겨져있다.
저녁 시간에 도착하여 보는 마운트 러쉬모아 전경이다.
미국 각주의 깃발과 함께 볼수있는 이 장면은 보는 순간부터 애국심을 불러일으킨다.
사우스 다코다의 키스톤(Keystone)이라는 지역에 마운트 러쉬모아가 있다.
여기서 잠깐! 꼭 언급하고 가야할 중요한 사항이 하나 있다. 그것은 큰바위 얼굴에 관한 것이다.
사우스 다코다에 있는 위의 4명의 대통령 상을 "큰 바위 얼굴" 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는것 같다.
그러나 (큰 바위 얼굴)은 나다니엘 호손의 단편 소설 제목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어니스트가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큰 바위 얼굴(Great Stone Face)을 닮은 사람을 동경하는 이야기이다.
큰 바위 얼굴( Old Man of the Mountain)은 New Hampshire 에 있다.
나다니엘 호손이 만년에 쓴 단편소설로 ‘큰 바위 얼굴’ 이라는 소재를 통해 여러 가지 인간상을 보여주면서 이상적인
인간상을 추구한 작품이다. 남북전쟁 직후, 어니스트란 소년은 어머니로부터 바위 언덕에 새겨진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아이가 태어나 훌륭한 인물이 될 것이라는 전설(傳說)을 듣는다. 어니스트는 커서 그런 사람을 만나보았으면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자신도 어떻게 살아야 큰 바위 얼굴처럼 될까 생각하면서 진실하고 겸손하게 살아간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돈 많은 부자, 싸움 잘하는 장군, 말을 잘하는 정치인, 글을 잘 쓰는 시인들을 만났으나
큰 바위 얼굴처럼 훌륭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어니스트의 설교를 듣던 시인이 어니스트가 바로 ‘큰 바위 얼굴’이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할 말을 다
마친 어니스트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자기보다 더 현명하고 나은 사람이 큰 바위 얼굴과 같은 용모를 가지고 나타나기를
마음속으로 바란다.
큰바위 얼굴은 뉴 햄프셔 주에 있는 화이트 마운틴(White Mountaion)에 있으며 정확한 이름은
"The Old Man of the Mountain" 이다.
불행하게도 2003년 5월 3일 폭풍으로 큰바위 얼굴이 무너져 내렸고 현재 복구 공사중이라고 한다.
(위 사진에서는 큰 바위 얼굴의 모습이 안타깝게도 사라져버렸다.)
현재는 4명의 얼굴만 있지만 언젠가는 한명의 대통령 얼굴이 더 새겨질지 알수없다.
정말 큰바위 얼굴의 주인공을 기다리는 것과 실제 나타나는 것이 우리들의 희망이다.
같은 장소에서 카메라의 색온도인 캘빈 값을 조절하여 다른 느낌의 표현을 하여본다.
구시대,
두사람보다는 신시대 정치인으로 나누어본다.
1941년 완공되었지만 아직도 다른 얼굴들을 조각할 만큼 큰 바위들이 많이 있는 그 산에 언젠가 우리 한인 후예
미대통령의 얼굴이 새겨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꿈도 가져본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이런 밝은 얼굴의 대통령 조각상이 만들어져서 후대에 보는이로
하여금 희망과 자부심과 애국심을 고조 시킬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밤9시 레이저 쇼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영상으로 가장 먼저 자유를 선포한다.
네 명의 대통령 얼굴이 소개되고,,,,
작업 과정도 영상으로 소개된다.
영상이 끝나면 무대 위로 베테란(미국 군대 출신자)을 불러서 나오게 한다.
무대로 올라온 모든 베테란들을 사회자가 한명 한명 일일히 소개하며 나라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이런 근엄한 분위기는 여기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큰 감명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나라 사랑은 꼭 해야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각인시키고 스스로가 애국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확실히 전달 해준다.
(우리 애들 15년전에 갔다 왔는데 그때의 감동을 아직 마음속에 간직하는 둣하다.)
나오면서 "동해물과 백두산이 ~~~~~ " 가 생각나는 것은 왜 일까?
비록 짦은 역사의 미국이지만 이런 점은 우리가 꼭 배웠으면 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부러움을 느낀다.
우리는 레이저 쇼 프로그램이 끝나고 가까이 자리잡은 숙소로 돌아갔다.
다음날 아침 미국에서 가장 큰 KOA 캠핑장 주위를 둘러보기로한다.
블랙 힐스 지역의 대자연 속에 묻혀있는 보물과도 같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15년전 이 곳에서 딸아이 두명은 호수의 배를 발로 저으면서 비록 힘은 들지만 행복해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의 모습이 떠올라서 사진도 찍어보고 추억을 되새김질 하면서 주위를 한바퀴 걸어본다.
이 KOA엔 우리처럼 텐트족이 있고,,,,
캠핑카 족들도 있어, 함께 모여서 블랙 힐스의 정기를 받으면서 여름 휴가를 즐긴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다시 마운트 러쉬모아로 달려간다.
오늘 오전엔 레인저 가이드 투어에도 참여하며 제대로 이 곳을 보려고한다.
입구에 서있는 보글럼 조각상을 내 발과 함께 촬영하여본다.
굿천 보글럼(Gutzon Borglum)은 마운트 러쉬모아 내셔날 메모리얼을 만든 사람으로
1871년 아이다호 출신이며 샌프란시스코와 프랑스 파리에서 조각을 공부했다.
1923년 사우스 다코다의 역사학자 로빈슨은 블랙 힐스의 니들스 연봉 바위에 서부 개척에 공로가 많은
몇 몇 인물들의 초상을 조각할 것을 착안하고 지역 유지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지역 연방 상원의원과
하원의원들과 의견을 모으고 적임자로 조각가 보글럼을 초빙하였다.
그러나 그 후 어떤 연유에서인지는 정확히 알수없지만 그 주인공이 네 명의 대통령으로 바뀌었다.
1925년 보글럼은 적당한 바위산을 찾기위해 두번째로 블랙 힐스 답사에 나섰다.
길도 없는 험준한 산악지대에 천막을 치고 밤을 지새면서 공사에 알맞는 산을 찾아 2주간을 헤멨다.
15일째 되는날, 거대한 바위산 밑에 도달한 보글럼은 정상의 바위 상태를 조사하기위해 산에 오를 준비를 했다.
얼굴 하나의 크기만해도 60피트나 되는 조각 네 개를 절벽 꼭대기에서 만든다는 것은 인간 능력의
한계를 넘는 작업이다.
그러나 그 후 2년 후 정확히 1927년 8월에 드디어 조각 작업이 시작되었다.
당시 대통령 캘빈 쿨리지(Calvin Coolidge)는 러쉬모아 산을 "미국민의 역사적인 기념지역"
으로 지정하고 모든 국민에게 적극적으로 돕자고 호소했다.
500피트 높이의 절벽 바위산에 작업 도구를 운반하기 위해 키스톤 마을의 남여노소가 모두 나서서
산밑까지 원시적인 도로를 만들었고 760개의 가파른 수직 계단을 완성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부지 선정 이래 14년간의 고된 작업이 이어졌으며 1941년 3월 보글럼이 사망하고
그의 아들 링컨 보글럼이 감독하여 그 해 10월에 완공 되었다. 아버지 보글럼의 원래 계획대로 완성을 보지
못한채 그렇게 아들에 의해서 조기에 조각은 마무리 되었다.
그 역사의 자리에 지씨 부부는 함께 서 보았다.
그리고 각기 따로 서보기도 하였다.
방문객 안내소 바로 밑에는 공사때 보글럼이 사용한 스튜디오가 있어 당시의 석고 모형과 각종 도구들이
진열되었고 3마일 떨어진 키스톤에는 러쉬모아 보글럼 스토리(Rushmore Borglum Story) 가 있어 제작
당시의 역사적인 자료들을 볼수있다.
이것이 방문객 안내소 밑 스튜디오에 있는 당시의 석고 모형이다.
입구엔 이렇게 각 주의 깃발이 세워져 있어서 미국 어디에서 오든 반갑게 맞이할 준비를 완벽히 갖추었다.
레인저 안내로 산 바로 아래까지 투어를 상세한 설명을 들으면서 하였다.
바위는 이런 식으로 깨어져서 아래로 떨어져있다.
바위 아래서 위를 올려다보며 찍은 사진이다.
위로 올려다보니 존경심이 더 일어나는 느낌을 받는다.
트레일을 따라서 한바퀴를 돌아보면서 다른 방향에서 바라다본다.
아버지, 굿천 보글럼과 그의 아들, 링컨 보글럼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젠 아쉽지만 투어를 마치고 발걸움을 다른데로 돌려야 하는때가 왔다.
아쉬움 마음에 고개를 다시 돌려보니 밀려 들어오는 수많은 인파가 이 곳의 인기를 실감케한다.
내가 처음 1998년 이 곳을 방문 했을때는 관광객은 거의 미국인과 동양인이라고는 일본 사람뿐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간혹 한국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반면 일본인은 안보이고 그 자리를 중국인이 대산하였다.
차를 타고 나오면서 큰바위 얼굴(?) 을 정확히 보고 나온다.
이제는 방향을 바꿔서 여기서 가까이 있는 크레이지 호스를 만나러 갈 차례이다.
미국 중북부 사우스 다코타 주의 블랙 힐스 산자락. 그곳엔 27km의 거리를 두고 극단적으로 대조되는 두 암각상이 있다.
러쉬모어 바위산의 미국 대통령 얼굴상과 인디언 전사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성난 말)의 전신상이 그것이다.
러쉬모어에 새겨진 미국 대통령은 조지 워싱턴(초대), 토머스 제퍼슨(3대), 에이브러햄 링컨(1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26대) 등 4명이다. 미국의 건국, 성장, 보존, 발전 에 기여한 위인들이다.
크레이지 호스는 세계 전쟁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1876년 6월 25일 ‘리틀 빅혼의 결투’ 에서 남북 전쟁
불패 신화의 주인공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가 이끄는 제7 기병대를 시팅 불과 함께 전멸시킨 영웅이다.
미국인들은 러시모어에서 역사의 자부심과 애국의 혼을 가슴에 담은 뒤 크레이지 호스 앞에서
역사의 오만과 인종 차별의 치부를 참회한다.
(이 두 곳을 위의 순서대로 방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순서가 바뀌면 감흥이 축소될수있다.)
러시모어의 얼굴상은 4개가 똑같이 18m다. 코는 6m, 눈은 3m. 루스벨트의 콧수염은 6m다.
1927년 첫 발파를 시작해 1941년 완공까지 14년이 걸렸다.
반면 크레이스 호스의 전신상은 1948년 착공돼 반세기가 넘었지만 이제 얼굴만 완성됐다.
러시모어에서도 잠시 일했던 세계적 조각가 코자크 지올코브스키의 고집 때문이다.
네 명의 대통령 얼굴이 크레이지 호스의 머리 뒤편에 한꺼번에 들어가도 그 공간이 남는다.
세계의 건축물중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할수있는 조각물이 현재 진행중이다.
수우족 추장 헨리 스탠딩 베어(Standing Bear·서 있는 곰)로부터 그의 생일과 크레이지 호스의 죽은 날(9월 5일)이
일치한다는 편지를 받은 조각가 지올코브스키는 마치 거대한 자석에 이끌리듯 한 편의 서사시 같은 성난 말의 삶을
재현하는 데 여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그는 러쉬모어와는 달리 혈혈단신으로 바위산 전체를 깨고 깎는 대역사를 구상했다.
높이 169m, 너비 201m, 얼굴 27m의 규모. ‘인디언 신화에 몸을 숙인 백인’이란 멸시가 이어졌고 가진 돈은
174달러가 전부. 하지만 연방정부의 재정 지원은 거절했다. 대신 하나 둘 관광객이 찾아오면서 생긴 입장료
수입만으로 묵묵히 작업을 계속했다.
1982년 그가 죽자 부인과 자녀, 손자들이 유업을 이어받았다.
그리고 꼭 50년 만인 1998년 마침내 우리네처럼 광대뼈가 툭 튀어나온 몽골리안의 얼굴이 완성됐다.
대를 이은 한 백인 조각가의 손끝에서 인디언의 역사가 재생된 것이다.
(50주년인, 1998년엔 우리가 방문한 해이기도하다.)
크레이스 호스의 전신상은 1948년 착공되었으나 아직 미완성 상태이다. 얼굴 모습은 현재 완성되었다.
높이 171미터, 길이 195미터나 되는 크레이지 호스상은 올해까지 64년째 조각되고 있다.
그의 얼굴에 전사의 정기가 서려있다. 바위를 뚫고 나올 만큼 커다란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조각가 코자크 지올코브스키(Korczak Ziolkowski:1908∼82)는 폴란드계 미국인으로서 보스턴에서 출생했다.
마운트 러쉬모아 바위 얼굴의 작업이 끝날 즈음인 1939년 그는 수우족의 추장 헨리 스탠딩 베어
(Standing bear:서 있는 곰)로부터 인디언 땅 위에 인디언의 영혼을 담은 조각을 제작해 달라는 제안서를 받게 된다.
그는 크레이지 호스의 신화적 삶에 매료되어 작업 결의를 굳힌다. 편지를 받은 지 8년 만인 1947년 5월
그는 블랙 힐스에 날아왔다. 높이 169m, 길이 201m 규모로 형상은 지어졌다. 1948년 6월3일 첫 번째 발파를 하던 날,
착공식에는 리틀 빅혼에 참전했던 노령의 수우족 전사 5명도 축하객으로 참석했다.
전기·물·도로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장정에의 도전은 시작되었다.
조각가 코자크 지올코브스키(Korczak Ziolkowski:1908∼82)
보스턴에서 태어난 코자크는 뉴욕에서 열린 세계 조각 전시회에서 최고상을 받을 정도로 유능한 조각가였다.
그는 '마운트 러쉬모아'의 대통령 상을 조각한 보글럼의 조수로 잠시 일했다고 하는데, 아마도 그는 조각 작품을
작업하며 굉장히 뿌듯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1939년 인디언 수우(Sioux)족의 추장 헨리 스탠딩 베어(standing bear, 서 있는 곰)의 편지를 받은 후
이같은 마음을 접은 것 같다.
그가 말하는 위대한 영웅은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 성난말)'였다. 추장은 코자크의 경력을 잘 알고 있었다.
'성난말'이 죽은 날짜와 코자크가 태어난 날짜가 같다는 것을 안 추장은 이를 계시와 같은 인연으로 여긴 것이다.
코자크는 그후 '성난말'의 삶을 연구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성난말'의 서사시 같은 삶을 재현하는데 남은 인생을
걸겠다고!,,,,,
편지를 받은 지 8년 만이었다.
1947년 5월 그는 성난말을 조각하기 위해 러시모어산에서 27㎞ 떨어진 '검은 언덕(Black Hills)'에 왔다. 그의 조각
구상은 마운트 러쉬모어 작업 차원을 뛰어넘었다. 꼭대기 암벽에서 아래까지 산 전체를 깨고 깎는 것이었다.
드디어 1948년, 그는 순전히 자기 재산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휴대용 착암기 하나로, 검은언덕의 돌산을 깎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가진 돈은 고작 174달러였다.
그는 1천만원을 지원해 주겠다는 연방 정부의 제안도 거절했다. 성난말의 모습을 조각하는데 백인들의
돈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는 후원금과 관광 수입만으로 버티며 35년 동안 750만t의 돌을 깬 뒤,
1982년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 후 그이 뜻을 받들어서 부인 루트와 여섯 아들들이 고생스러운 작업을 계속하고있다.
도대체 인디언 추장 크레이지 호스가 ('성난말') 누구였기에? '
잘나가던 조각가 코자크가 죽을 때까지 그의 조각을 만들도록 붙잡아 놓을수 있었던 것일까.
인디언 추장 크레이지 호스 준공식 당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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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등록 일시 [2011-09-10 12:17: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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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미국)=뉴시스】김운영 편집위원 = 지난 5일 네이버데이(노동절) 연휴에 미국의 정신을 상징하는 위대한 대통령 4명의 얼굴 조각과 인디언의 영웅 조각이 있는 South Dakota, Black Hills 일대에는 미국도처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콜로라도주 인근 덴버 공항은 모든 항공편이 만원이었고 공항청사도 몹시 붐볐다.미국 중서부에 위치한 South Dakota주 남쪽 고원 지대 Black Hills 에는 미국 건국대통령 조지 워싱턴(초대)과 토머스 제퍼슨(3대) 아브라함 링컨(1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26대) 등 4명의 대통령 얼굴 조각이 있는 Mt. Rushmore 가 있고 그곳에서 남쪽으로 27km 떨어져 있는 곳에는 미완의 인디언 전사 Crazy Horse(성난 말)가 말을 타고 큰눈을 부릅뜨고 활시위를 당기며 뛰어나오는 Crazy Horse Memorial 이 지금도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이 곳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각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조각을 보기 위해 1년 내내 모여 든다. 대통령들의 얼굴 상은 1927년에 시작 1941년에 완공되었고 저항의 상징 인디언 戰士 크레이지 호스는 1948년에 첫 발파를 시작으로 지금도 이어지고있다. 블랙 힐스의 암봉 들이 거대한 역사의 인물로 변해가고 있다.조각이 있는 러시모어 정상은 해발 1,717m 화강암 암봉이고 조각된 얼굴 크기는 18m, 코가 6m, 눈은 3m. 조각가 거츤 보글럼(Gutzon Borglum 1867∼1941)과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14년의 공사 끝에 완공이 되고 크레이지 호스는 Korczak Ziolkowaski(1908∼82) 가 1948년에 인디언의 피부색을 닮은 암산에 암각을 시작 아들 들이 대를 이어 얼굴만 조각 하는데 50년이 걸려 1997년 6월 얼굴만 높이(27m)의 준공식을 가졌다. 광대뼈가 솟아 있고 눈을 부릅뜬 분노의 얼굴이다. 이글거리는 눈동자, 꾹 다문 입 의 몸통과 말의 형체는 아직 나타 나지 않고 있다 이 조각의 완공은 앞으로 100년은 걸릴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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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9.5 - 인디언 수족 추장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 사망
크레이지 호스 [Crazy Horse /TaSunko-Witko, c1840~1877.9.5]
1876.6.25 - 미 제7기병대, 인디언에게 전멸
1800년대 중반, 미 대륙의 동쪽과 서쪽을 이미 정복자들에게 빼앗긴 인디언들에게 남은 땅이라곤 중북부의 대평원뿐이었다.
남북전쟁으로 경황이 없던 정복자들은 두 번의 ‘라라미 조약’을 통해 그 길을 지나는 백인 개척자들의 신변안전을 보장받았다.
대신 인디언들에게는 영토보장을 약속했다.
그러나 남북전쟁도 끝나고 이 지역 내 블랙힐즈에서 금광이 발견됐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정복자들의 탐욕이 되살아났다.
미 정부가 인디언들에게 1876년 1월 31일까지 이곳을 떠나 보호구역으로 옮기라고 통보했지만 인디언들은 시한 내에
이주할 수 없었다. 미 정부가 제7기병대를 급파하자 수우족의 최대 부족인 라코타족과 샤이엔족은 시팅불과 크레이지 호스를
중심으로 몬태나주(州) 리틀 빅 혼 강가에 모여 항전 채비를 했다.
1876년 6월 25일, 남북전쟁의 영웅 커스터 중령은 다른 부대와의 합류약속을 깨고, 먼저 인디언 공격에 나섰다.
하지만 전투가 어떻게 진행됐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코만치라는 기마만이 살아남았을 뿐 200명 이상의 기병대원
전원이 몰사했기 때문이다.
전설적인 인디언 추장을 만나러온 사람들이다.
이 지역에 50만대의 바이크 족이 이 기간 블랙 힐스 지역에 모인다고 한다....
이 모형대로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저기 보이는 바위 사이에 구멍을 만드는 작업이 가장 어려운 작업이라고 한다.
1998년도에 왔을땐 다이너 마이터로 폭파하는 관경을 직접 목격하였다. 그때에 비교하면 구멍이 꽤넓어졌다.
1948년부터 시작한 작업을 연대별로 볼수 있도록 전시해 놓았다.
기념품 점에서 파는 물품들은 인디언들이 직접 만들어서 거의가 기부 한 것이고 수익금은 자신들의
영웅을 탄생 시키는데 사용된다고 한다.
성난말의 조각 모형 아래에는 백인들의 조롱섞인 질문 '네 땅이 어디 있느냐'에 대답한 성난말의 말이 새겨져 있다.
"나의 땅은 내가 죽어 묻힌 곳이다(My lands are where my dead lie buried)." 라고,,,,,
오늘도 성난말은 앞을 보고 달린다.
방문자 센타 앞에서 볼수있는 두마리의 말 동상이다.
전시해 놓은 것들을 사진으로 옮겨보았다.
이 얼굴은 내 마음에 각인되어 어느새 확 박혀 들어온다.
크레이지 호스여! 모든 인디언의 마음속에서 영원하라~~~~~~
마운트 러쉬모어 vs. 크레이지 호스
러시모어 바위산의 대통령 얼굴은 미국 역사의 자부심이다. 인디언 戰士 크레이지 호스의 바위 얼굴은
백인의 야만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다. 한 곳에 있는 두 영웅은 극단적으로 대비 되지만 공존한다.
러시모어가 자유와 애국의 열정을 불어넣는다면 크레이지 호스는 역사의 오만과 치부를 정화한다.
산 꼭대기의 암벽을 깼다. 부수고 다듬었다. 다이너마이트 폭발에서 망치질까지 혼신의 정성을 기울였다.
두 조각가는 인생을 걸었다. 역사의 감수성과 신념으로 자연의 거친 장벽에 도전했다.
세월은 기약없었다. 수십 년이 걸린 대역사(大役事)였다. 산 모습이 바뀌었다. 산 봉우리가 사람의 얼굴로 변했다.
도봉산의 인수봉 같은 곳에 새겨진 초상화. 거대한 암각(岩刻) 인물상은 이집트의 스핑크스나 피라미드와 비교된다.
인간과 역사가 이뤄낸 장엄한 다큐멘터리다. (크레이지 호스는 지구상에서 인간이 만든 가장 거대한 조각상이다.)
미국 중서부에 있는 사우스 다코타(South Dakota) 주의 블랙 힐스(Black Hills, 검은 언덕).
그 곳의 산 봉우리에는 두 개의 암벽 인물상이 있다.
하나는 마운트 로쉬모아(Mount Rushmore)의 대통령 얼굴,
다른 하나는 인디언 전사(戰士)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성난 말)의 얼굴이다.
마운트 러쉬모어에 새겨진 대통령 얼굴은 조지 워싱턴(초대)·토머스 제퍼슨(3대)·에이브러햄 링컨(1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26대) 등 4명이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만들고 융성시킨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1927년에 시작해 완공(1941년)까지 14년이 걸렸다. 미국인들은 이곳을 ‘민주주의 전당’으로 부른다.
미국 역사의 자부심, 미국의 긍지가 넘쳐난다.
크레이지 호스는 그 곳에서 27km 떨어져 있다. 같은 블랙 힐스 산자락이다.
작품 일부인 산 정상의 암벽에 얼굴을 새기는 데만 50년이 걸렸다. ‘성난 말’은 19세기 후반 백인과의 전쟁 속에
나오는 인디언 영웅이다. 아메리카가 본래 우리 땅이라는 원주민의 자존심, 백인에 대한 처절한 저항 정신이 담겨 있다.
인디언의 잃어버린 역사를 극적으로 재생시켜 주는 곳이다.
두 현장은 대비된다. 미국 역사의 다양성과 복잡성이 미묘하게 얽혀 있다. 성취와 좌절, 문명과 야만,
갈채와 경멸, 환희와 증오, 빛과 그림자의 극과 극이 혼재하는 미국 역사의 단면을 되돌아보게 한다.
지난 1998년과 2012년 8월 두번에 걸쳐서 이 곳을 찾았다. 첫번째인 1998년에는 나와 아내 딸 아이 둘인
우리 가족 5명이 함께 갔고 2012년 8월엔 아내와 친구 세명과 함께 갔다. 나는 다른이들에게 이 역사의
현장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 물론 나도 또 보고 싶었고,,,,,
여행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은 이 곳을 봐야 미국 여행의 진가를 알수있다.
고 말하고 싶다.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은 다르겠지만 우리 일행들은 이곳을 나오면서 묘한 감정에 쌓였다.
다음 여행지는 동물의 천국인 커스터 스테이트 팍으로 안내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