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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로이드 웨버는 1948년 하이픈(-)이 붙지 않는 두 개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로이드 웨버'라는 성을 받으며 영국에서 태어났다. 그가 음악 가정에서 자랐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작곡가이며 런던 음악 대학의 이사이자 로열 음악대학의 교수인 아버지와 피아노 교사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자라난 앤드류는 현재 첼로 연주자인 동생 줄리안 (Julian Lloyd Webber- 얼마전 한국 공연을 가진 바 있다_)와 함께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심취하여 프렌치 호른, 바이올린, 피아노를 연주하였다. 또한 그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가족은 연극 배우였던 숙모였다. 그녀는 어린 웨버에게 무대에 대한 무한한 매력을 느끼게 해준 것이다. 이렇게 가족으로부터 예술 적인 기질을 이어받은 로이드 웨버는 그의 나이 여덟살 때 그의 집에 서 장난감 극장 (Toy Theater)위에 미국의 전형적인 쇼를 무대화했고, 아홉 살 때는 자신이 작곡한 모음곡들을 출판하기도 하였다. 그의 음악적 특성 가운데에서 절충주의(Eclecticism)는 광범위한 음악적 취향을 가졌던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나에게 처음 로큰롤 음악이 담긴 레코드를 사준 사람은 나의 아버지였다."고 로이드 웨버는 1982년 <뉴욕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밝히면서, "내게 음악은 단지 음악일 뿐이고, 굳이 분류를 한다면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라고 그의 음악관을 털어 놓은 적이 있다. 이는 로이드 웨버의 음악은 그 장르에 있어서 너무 대중과 영합한다고 생각하는 평론가들을 향애 피력한 그의 음악에 대한 소신이기도 하다.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스쿨을 졸업하고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한 웨버는 일 년 뒤에 로열 음악대학으로 편입하여 클래식 음악을 전공 하였다. 재학중에 그는 처음으로 음악극 <우리들의 유사함(The Likes of Us,1965)>을 작곡 하였다. 가사는 당신 레코드 제작자였고 , 로이드 웨버보다는 세 살 위였던 팀 라이스가 썼다. 이들의 첫 번째 작품은 한번도 무대에 올려진 적이 없었지만 그 뒤의 걸작,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에비타> <오페라의 유령> 등에서 불후의 콤비를 이룬다. 팀 라이스의 가사와 함께 완성된 두 번째 작품은 1967년 작곡되었고, 68년에 런던의 성 바울 중학교 합창단이 발표한 오라토리오 <요셉과 놀라운 천연색 꿈의 외투> 이다. 이 곡은 처음 발표한 뒤에 성 바울 중학교의 학부형이었던 '런던 선데이 타임즈'의 음악 평론가의 호평에 힘입어 웨스트민트터 센트럴 홀에서 일반 대중에게 콘서트 양식으로 발표 되었고, 결국 십오분짜리 오리지널 곡은 90분 , 2막 뮤지컬로 개작되어 1976넌 브로드웨이에서 그 선을 보였으며, 1982넌 리바이벌 공연에서는 토니상 후보작으로까지 오르는 쾌거를 이루었다. 요셉과 그의 형제들의 전기적 이야기인 '요셉...'은 프랑스 카페 뮤직, 칼립소, 칸츄리 그리고 재즈가 대답하게 혼합된 작품이다. '요셉..'을 통해 자신의 다양한 음악성을 보여 준 로이드 웨버는 다시 팀 라이스와 함께 그들이 살고 있는 시대의 음악인 록에 심취하기 시작한다. 구속을 거부하는 히피 문화와 엘비스 프레슬리와 비틀즈로 대변되는 록음악의 절정기인 1970년 , 로이드 웨버와 라이스는 대중적이고 지극히 논란의 여지가 있는 록 오페라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를 완성한다. 이 작품은 헤아릴 수 없는 다수에게 주목을 받으면서 , 비교되기에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고 생각 되어 온 대중음악과 클래식 형식의 조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천명 한 것이다.찬반의 혼합된 반응속에 개막된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 대해 대부분의 관객들은 제작에 참여한 예술가들의 무한한 상상력에 감탄한 반면 , 적지 않은 비평가들은 절충주의적인 음악 스타일에 언짢아 했고, 어떤 이들은 예수의 이야기를 담은 극에 록 음악을 사용한 사실에 분노하였다. 이에 답답함을 느낀 로이드 웨버는 <뉴스데이> 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사용한 록에 대해 "그것은 스트라빈스키의 고전 음악 탈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원했던 것은 우리 모두에게 통용 될 수 있는 새로운 용어, 곧 새로운 스타일을 찾는 것이었다"라고 말하기에 이르렀다. 록 음악의 정성 자체가 법적으로 정당 살인인 전쟁이나 일으키는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을 담고 있고 , 자유와 평화를 갈구 하는 히피 세대의 정신세계를 담은 것이기에 60에 청소년기를 보낸 로이드 웨버에게는 예수의 이야기라 할지라도 그것을 록음악에 담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예술가는 언제나 그 시대를 작품에 담는다는 것이 엄연한 명제라면, 로이드 웨버에게 있어 록은 그 시대의 리듬이요, 그세대의 외침이기 때문이다. 1978년 서른이 된 로이드 웨버는 뮤지컬 연출의 거장, 헤롤드 프린스(<캬바레>의 연출가-를 만나서 자신의 클래식 음악에 대한 재능을 마음껏 발휘한다. 팀 라이스가 가사를 쓴 <에비타>는 브로드웨이 연극에서 터부시해 온 정치적 소재를 다루고 있다. 1978년 런던 공연을 거쳐 79년 브로드웨이에서 첫 공연을 가진 이 작품에서 로이드 웨버는 그의 음악이 얼마나 극적이고, 극적 전개와 인물 구축에 어느 정도 지대한 공헌을 하는지를 보여 주었고, 그 결과 <에비타>는 로이드 웨버의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최우수 작품상, 작곡상 등을 포함하여 일곱 개의 토니상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 뒤에 나온 <캐츠(1982 뉴욕)>와 <오페라의 유령(86 뉴욕)>도 또한 토니상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으면서 , 로이드 웨버는 그의 음악이 갖는 극적 공헌도에 대하여 객관적 인정을 받았다. 특히 이 작품은 현재도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하는 뮤지컬로 절찬리에 공연되고 있다. 이 밖에도 <스타라잇 익스프레스 1984 런던/1987 뉴욕>와 <사랑의 이모저모 1989 런던/1990 뉴욕>등 흥행 성곡작을 작곡한 로이드 웨버는 1980년대에 가장 많은 작품이 동시에 공연되는 작가로 기록되면서 명성을 쌓아갔다. 그리고 <사랑의 이모저모>가 93년에 막을 내림으로써 <캐츠>와 <오페라의 유령>만이 그의 이름을 지켜 주던 중 94년 10월 그는 또 하나의 흥행작 <선셋 대로>를 발표했다. 이 작품은 연일 표가 매진되고 이 곳 연극 잡지와 신문에서 연일 기획기사로 음악 , 무대,연기 등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보다는 관심이 줄어들고 있으며 98년 현재 이미 브로드웨이에서는 공연을 끝내 버렸다. 96년에 로이드 웨버는 <Whistle down the wind> 를 발표했지만 , '완성도가 떨어지는 졸작' (워싱턴 포스트) 이라는 혹평을 받았다. 그러나 98년 재개된 웨스트 엔드 공연은 대단한 호응속에 공연을 지속하고 있다. 또한 지금 현재 제작 단계인 <오페라의 유령2>도 많은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다. 그러나 된다 안된다 여러 가지 설이 많아서 아직까지 확실하게 완성할지는 좀더 두고 보아야 할 문제다. 대부분의 예술 작품은 시대를 초월하여 평가되고 그 가치는 오랜 시간을 두고 음미되고 후세에 남는다. 다만 공연물이라고 하는 것은 그 성격상, 그 시대의 평가가 가장 중요하고 적절하다. 그 어떤 기술을 빌리더라도 공연의 현장성을 보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연이 지금도 존재하고 있는 브로드 웨이 최고의 실력자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현재 평가는 그 무엇보다도 살아있는 기록이 될 것이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는 브로드웨이에서 그 누구보다도 많은 관객을 유치한 뮤지컬의 작곡가이고 누구보다도 상을 많이 받은 예술가에 들며,또한 많은 비평가들로부터 질시와 모욕에 찬 평을 받은 예술가이다. 보수적인 음악 평론가의 눈에 비친 뮤지컬에서의 대중 음악 원용, 많은 곡들의 유사성, 그리고 클래식 음악의 도용 등은 그의 예술 세계에 있어 오점으로 남을 수 있다. 반면에 로이드 웨버는 다음의 몇가지 점에서 무지컬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그 첫째는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음악 형태를 절충하여 뮤지컬의 음악을 다양화 시켰고, 둘째 극적인 음악을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이다. 이것이 '록 뮤지컬'을 탄생시켰고, 그의 작품이 극적 재미를 갖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소리(음악)은 뮤지컬의 음악으로 적합하지 않다"라는 그의 말처럼 곧 그는 뮤지컬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해왔다. 관광 상품이라든가 관객과의 영합을 앞세우며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하는 이도 없지 않으나 예술성이 배제된 작품은 관객이 외면하고 관객이 외면하는 작품의 장기 공연은 불가능하다는 평범한 진실을 생각할 때 그의 작품을 찾는 고객이 끊이지 않는 브로드웨이에서 이루어지는 로이드 웨버의 작업은 분명 현대연극의 한 장 르인 뮤지컬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있으며 현대인에게는 더욱 사랑받는 공연예술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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