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은 지축의 남단인 남위 90°의 지점이지만 남위 66.5° 이남의 섬과 남극해를 포함하는 지역을 남극지역이라고 한다. 대륙은 중심부는 해발고도 4,000m에 달하는 고원을 이루고 있으며 대륙의 평균고도는 약 2,300m이다. 남극대륙은 면적이 약 1,400만㎢로 1%에 해당하는 노암지대를 제외하고는 대륙전체가 얼음으로 덮혀있다. 지구상의 전체 빙하 면적의 86%, 체적의 90%를 남극의 얼음이 차지하고 있다. 대륙빙은 적설이 오랜세월을 거치면서 자체의 무게로 밀도가 높아져서 형성된것으로 빙붕을 포함한 남극대륙의 얼음 두께의 평균은 1,700m에 이른다. 남극지역의 얼음이 모두 녹는다면 전세계의 해면이 약 60m 상승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대륙빙은 주로 빙붕으로부터 바다로 흘러나간다. 빙붕은 표면이 평탄하고 두께가 200∼300m나 되어, 외곽의 가장자리에서 빙애를 이룬다. 그것이 떨어져서 바다로 표류하여 나간 것이 탁상빙산으로 길이 100km에 달하는 것도 있다. 내륙 중심부의 연평균기온은 -55℃에 달한다. 최난월에 -30℃, 최한월에는 -70℃가 된다. 최저 기온으로는 1968년 8월 24일, 보스토크 기지(남위 78°, 동경 107°, 해발고도 3,488m)에서 -88.3℃가 기록되었다. 연안기지의 기후는 비교적 온화하여 프린스올라프 해안에서는 최난월 -0.9℃, 최한월 -20℃를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이 남극은 같은 극지인데도 북극에 비해 훨씬 더 추운 이유는 남극지역은 얼음이 덮인 고지성의 대륙이고, 또 겨울의 암흑기에는 대륙 표면은 일방적으로 열을 방출하여 차가워지고, 낮이 긴 여름에는 흰 설빙면이 일사량의 대부분을 반사하기 때문이다. 연안부에서는 사면하강풍(카타바풍)이라고 하는 대륙사면에서 내리부는 바람이 때로는 초속 50m를 넘는 일도 있다. 강수량은 거의 눈으로 충당되지만, 연안부에서는 여름에 비가 오는 일도 있다. 중심부의 강수량은 100mm 이내, 연안부에서는 200∼500mm 정도이다. 강설과 눈보라의 구별이 곤란하기 때문에 정확한 강수량은 구하기 어렵다. 대기 속의 얼음알갱이에 의한 헤일로(halo:해무리, 달무리), 환일, 태양주 등 신비한 광학현상이 자주 일어나고, 신기루도 자주 나타난다. 흐린 날에는 구름층을 통과한 일사가 빙설면과 구름 사이에서 난반사를 되풀이하기 때문에, 물체의 그림자가 없어져버리고 지형지물의 판별이 곤란해지는 화이트아웃현상이 일어난다. 이런 경우에는 지면의 고저, 원근에 대한 감각을 잃게 하여 행동에 지장을 주기도한다. 대륙 내부는 눈과 얼음에 덮여 있으므로 고등동식물은 찾아볼 수 없다. 남극지역에 서식하는 동물로는 널리 알려진 펭귄류, 고래류 외에 바다표범, 물개, 조류 등을 들 수 있는데, 그들 동물은 남극해와 그 연안의 노암지대를 서식처로 삼고 있다. 펭귄은 아델리펭귄과 코티펭귄의 2종류가 있고, 그 밖의 조류로는 스노피전, 바다제비류, 갈매기류 등 10여 종류가 연안지역에 서식하고 있다. 식물은 남극반도 북부에 2종의 현화식물이 있는 외에, 약 70종의 이끼류, 400여 종의 지의류가 있다. 그들 식물군락에는 작은 진드기, 박테리아 등이 기생하고 있다. 남극대륙에는 각국에서 관측기지 건설하여 남극에 관한 조사와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미국의 맥머도 기지, 러시아의 벨링즈하우즌 기지, 중국의 장성 기지 등 46개 기지가 건설되어 있는데, 1988년 2월 한국도 킹조지섬에 세종 기지를 건설하여 극지 연구는 물론, 남극대륙 진출의 전진기지를 구축하였다. 한국은 1986년 남극조약에 33번째로 가입하였고, 1989년 10월에는 남극조약협의당사국(총 23개국)의 지위를 획득함으로써 남극대륙의 자원개발을 위한 기득권 확보는 물론, 남극의 대기, 기상, 지질, 광상학등 기초과학 분야뿐만 아니라 크릴새우 등 수산자원 개발에도 한몫을 하게 되었다.
남극탐험사 1772∼1775년에 영국인 J.쿡은 오늘날의 프린스올라프 해안 앞바다에 이르러, 처음으로 남극권을 돌파하였다. 그때의 쿡의 보고를 계기로 해서 남극해에서의 바다표범, 고래잡이가 시작되었다. 러시아의 벨링즈하우즌의 남극주항 (1819∼1821)에 씌어진 보스토크, 미르니 두 배의 이름은 현재 러시아의 관측기지 이름으로 쓰이고, 그 자신의 이름도 1968년 2월에 남극반도에 건설된 기지 이름으로 명명되었다. 미국의 파머(1820∼1822), 영국의 J.웨들(1821∼1822)은 각각 그 이름을 따서 붙인 지역을 탐험하였고, 영국의 비스코(1830∼1832)의 엔더비랜드, 프랑스의 뒤르빌(1837∼1840)의 아델리랜드, 미국의 윌크스(1838∼1842)의 윌크스랜드의 탐험이 뒤를 이었다. 영국의 로스는 1839∼1843년의 항해로 로스해에 도달했고, 1895년 노르웨이의 크리스텐센은 로스해 서안 아데어곶에서 최초의 대륙 상륙을 하였다. 벨기에의 제를라시는 1897∼1899년의 탐험 때 벨링즈하우즌해에서 배가 얼음에 갇혀, 1898∼1899년 남극에서 처음으로 월동을 하였다. 같은 해에 보르흐그레빙크가 인솔한 영국 탐험대는 아데어곶에서 최초의 대륙 월동을 하였다(1899). 1901∼1904년, 스콧이 이끄는 영국탐험대는 맥머도사운드에 기지를 설치하고, 로스 빙붕과 빅토리아랜드의 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무렵부터 거의 매년 탐험대가 진출하게 되었다. 1907∼1909년에 영국의 새클턴은 남위 88°23'의 지점까지 도달하였는데, 그때의 조사 성과는 훌륭한 것이었다. 1910∼1912년 아문센과 스콧 두 사람의 남극점 도달 경쟁은 너무도 유명하다. 아문센은 1911년 12월 14일에, 스콧은 다음 해 1월 17일에 남극점에 도달하였으나, 스콧은 귀로에 조난으로 5명의 대원과 함께 죽었다. 1911∼1914년, 오스트레일리아의 모슨은 아델리랜드의 조사를 실시하고, 새클턴은 웨들해에서 로스해에 이르는 남극 횡단을 시도하였으나 배가 파선하여 1916년에 귀국하였다. 1925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에 걸친 영국의 디스커버리호에 의한 남극해의 해양생물 조사는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1928년 11월 26일 오스트레일리아의 윌킨즈는 최초의 남극비행을 하고, 미국의 버드 탐험대는 1928∼1930년의 탐험에서, 1929년 11월 29일에 비행기로 남극점에 도달하였다. 리틀 아메리카에 기지를 설치한 버드 탐험대는 항공기를 이용하여, 1933∼1935년에 제2회, 1939∼1941년에 제3회의 조사를 실시했다. 노르웨이의 리서라르센은 퀸모드랜드를 조사하고, 모슨이 지휘한 영국,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 합동탐험대는 연안 조사를 실시하였다. 1946∼1947년 미국은 ‘하이점프’ 작전하에 해군이 공중정찰, 군사훈련을 실시하였고, 다음 해 다시 ‘윈드밀’ 작전하에 헬리콥터로 탐사하였다. 같은 해 미국의 로네가 이끄는 탐험대에는 여성대원 2명도 참가하였다. 1948∼1952년 노르웨이, 영국, 스웨덴 등 3국이 합동으로 퀸모드랜드를 탐험하고, 프랑스의 빅토르는 탐사대를 이끌고 아델리랜드에 기지를 설치하였다. 이와 같은 탐사활동은 1957∼1958년의 국제지구관측년에 국제협력에 의한 남극관측으로 발전하였다. 한편 1985년 한국도 윤석순 남극관측탐험대 단장이 16명을 2개조로 편성, 킹조지섬과 빈슨매시프산(5140m)을 탐사하였다. 이어 1994년 1월 11일 허영호가 이끄는 4명의 남극도보탐험대가 패트리어트힐을 출발한 지 44일 만에 남위 90°의 남극점에 도달하였다. 남극점 도보탐험은 영국, 이탈리아, 일본에 이어 4번째의 쾌거로, 1993년 초 일본 탐험대의 67일 기록을 23일이나 단축였다. <두산동아백과사전에서 발췌> 남극지역여행은 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 칠레의 푼타 아레나스, 아르헨티나의 우슈아이아에서 에서 선편을 이용하여 갈 수 있으며 호주의 관타스항공에서 12~2월에 남극대륙 여행항공편을 운항하기도 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