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딸과 함께 LA서 휴스턴까지 (샌 안토니오)

세울림(케니지) 2013. 4. 29. 16:09

 

 

나는 지난 이틀간을 하루에 꼬박 12시간씩 이상을 운전하느라 몸이 너무 피곤하여 전날 밤

눕자 마자 잠이 들었고 다음날 아침 늦게 일어났다. 오늘은 샌 안토니오에서 휴스턴 까지로

3 시간만 운전을 하면 되기 때문에 아침에 여유에 또 여유를 부려보기로 하였다.

 

 

 

샌 안토니오서 우리가 묵은 호텔이다.

 

 

 

아주 시설이 좋은 고급 호텔로써,,,,

 

 

 

방따로 응접실이 따로 분리되어있다.

 

소파위에 이불이 널부러저 놓여있는 이유는 내가 전말 밤 코에서 찌게를 너무 많이 끊여서(?)

딸애는 아예 내 코찌게 끓이는 소리를 피해서 다른 방으로 피신 했다고 나에게 심하게 항의를 하였다.

 

호텔서 제공하는 공짜 아침 식사를 마지막 손님 자격으로 느즈막히 먹고 다운타운으로 차를 몰아갔다.

 

 

 

눈에 들어오는 도시의 풍경이 예사롭지않다.

 

 

 

이번은 순수 여행이 목적이 아니라서 준비를  조금 부족하게 하였기 때문에 급히 필요한 정보 수집를 먼저 하기로 하였다.

 

샌안토니오(San Antonio)는 텍사스 주의 남부, 멕시코 가까이에 있는 공업도시이다. 휴스턴에 이어 텍사스 주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으며, 미국 내에서는 일곱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2005년의 인구 조사를 기준으로 인구는 1,256,509 명이다.

텍사스 주 교통의 중심지이며 스페인 통치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도시로서, 교육 군사시설이 많다.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곳은 텍사스 수비대의 전멸로 유명한 알라모 요새(The Alamo)라는 유적지가 있고,

샌 안토니오 강을 끼고 신,구 도시로 형성된 리버 워크(River Walk)가 있다.

 

 

 

이런 2층 투어 버스를 타고 샌 안토니오 시내를 돌아볼수도 있다.

 

 

 

첫번째로 찾아간 곳은 알라모 유적지이다. 우선 이곳의 역사적인 배경을 알아보도록 하겠다.

 

 

 

알라모 전투는 텍사스 독립 전쟁 당시에 텍사스 주민 186명이 알라모 요새에서 1000명에 달하는

멕시코군에 맞서 싸우다가 전사한 전투이다. 13일간의 포위로 산타아나 장군이 이끄는 멕시코군은

산 안토니오 데 벡사(오늘 날의 샌 안토니오) 근처의 알라모 전도소를 강습했다.

 

2명의 텍시언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전사를 했다. 그 전쟁 동안 인식된 산타아나의 잔인함은 많은 텍사스

사람들의 분노를 사서 텍사스 군에 입대를 하게 했다. 복수심에 불탄 텍시언들은 1836년 4월 21일 샌재신토

전투에서 열세에도 불구하고 멕시코 군을 물리쳤고, 텍사스 혁명을 종결시켰다

 

 

 

이 건물 안에서 수비벽을 쌓아 힙겹게 버티면서 전투에 임했다.

 

 

 

시내 중심가엔 기념비가 세워져있다.

 

 

 

그 당시 사용한 건물안에 있는 포의 모양이다.

 

 

 

 

건물 밖 마당엔 이런 포가 세워져있다.

 

 

 

 

원래 알라모는 스페인의 전도소로서 1718년 샌안토니오 데 벡사(현 텍사스 주 샌안토니오)에 건설되었다.

19세기 초반 스페인군 기병대가 주둔하여 이 요새를 알라모 요새라고 불렀다. 멕시코에서 독립을 획책하던

앵글로 색슨 계 텍사스 주민들은 샌안토니오시를 점령했다.

 

 

 

 

1835년 12월 텍사스 독립 전쟁 초기에 텍사스 의용군 부대는 멕시코 군을 몰아내고 샌안토니오 시와 알라모 요새를 점령했다.

샘 휴스턴 등 몇몇 텍사스군 지도자는 소수의 병력으로 멕시코의 대군을 이기기는 불가능하다가 판단하고 샌안토니오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알라모 의용군들은 후퇴하기를 거부했고 이후에 1836년부터 멕시코 대통령 산타아나 장군이

이끄는 멕시코군이 샌안토니오를 탈환하고 알라모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전시된 그 당시 병원의 모양이다.

 

 

 

코스 장군의 패배로 멕시코 군은 테하스 주의 거점이 없어졌다. 반면 멕시코는 이듬해 대통령 겸 장군인 산타아나가

반란군 진압을 결정했다. 산타아나는 1836년 초에 산 루이스 포토시로 약 6,100명의 병사와 20문의 대포를 모아 테하스 주를

거쳐, 코아우일라 주의 살틸로까지 진군했다. 군대는 악천후 속에서 리오그란데 강을 건너 눈보라 속에서 산길을 진군했다.

 

샌안토니오 데 벡사는 중간 타격 목표 중 하나였다. 그의 최종 목표는 텍사스 정부를 잡고 반란을 일으킨 주에 대해 중앙의 지배,

혹은 멕시코의 "중도" 정권을 세우는 것이었다. 그는 1835년에 이미 사카테카스 주의 반란을 진압한 바 있었다.

 

 

 

1836년 2월 23일 산타 아나와 그 군대는 샌안토니오 데 벡사에 도착했다. 보병 대대를 절약하기 위해, 보병과 기병을 혼성한 부대였다.

그들은 영국제의 베이커, 구식으로 사거리는 짧지만 위력있는 타워 머스켓, Mark III, 브라운 베스 머스켓 등을 갖추고 있었다.

그 당시 멕시코 군은 평균 신장 155cm로, 그 대부분이 전투 경험이 없는 초보 징집병이었다.

 

 

 

멕시코 군대은 개별적인 개별 사격 솜씨는 열등하지만, 자주 표적을 맞추는 수준이었다. 초기 장비는 178mm 곡사포 4문,

4 파운드 (1.8kg)포 7문, 6파운드(2.7kg)포 4문, 8파운드(3.6kg) 포 4문과 12 파운드 (5kg) 포 2문을 가지고 있었다.

 

 

 

멕시코군은 리오그란데 강을 건너 남쪽에서 접근해 알라모 요새에 대한 포위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멕시코군은 1800~6000

명에 달하는 대군이었으나 알라모 요새를 지키는 텍사스 의용군은 소수 부대에다가 텍사스 주민과 나중에 보강된 증원군

약간인 186명 정도였다. 텍사스 의용군의 지도자는 제임스 보위 대령과 윌리엄 B. 트래비스 대령이었고 유명한 데이빗 크로켓도

텍사스 의용군 수비대 중 한 명이었다.

 

이들은 3월 6일까지 13일에 걸쳐 멕시코군에 대항해 저항했으며, 막바지에는 탄약이 떨어져 총을 막대기로 쓰며 저항했다.

그러나 마침내 1836년 3월 6일 멕시코군은 안마당 외벽의 무너진 틈을 타 물밀듯 들어왔고 183명의 텍사스 의용군은 전사했다.

멕시코군도 1000~1600명에 달하는 병사들이 전사했다.

 

 

 

그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고 나오는 출구에서서 기념 촬영을 하여본다.

 

 

 

이 곳은 알라모 요새 입구의 모습이다.

 

 

 

더 멀리보면 이런 모습이고,,,,,

 

 

 

발걸음을 뒤로 더 멀리 옮겨서보면 이런 모습을 볼수있다.

 

 

 

시내를 볼수있는 관광용 마차도 이렇게 잘 준비되어있다.

 

 

 

알라모 요새를 다 둘러보고 발걸음을 다른곳으로 옮겨본다.

 

 

 

청계천이 이곳을 모델로 하였다고 하는 말을 들었는데,,,,, 사실 아니면 지어낸 말???

 

 

 

 

리버 워크(River Walk)로 내려왔다. 그러나 걸어서 다 둘러볼수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서

우리는 크루즈를 이용하기로 하였다.

 

 

 

요금은 이러하다.

 

 

 

표를 사서 보여 주면서 배위로 올라탄다.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드디어 시작되는 리버 투어 시간이다.

 

 

 

 

양쪽 주위로 보이는 건물들의 경치가 장난이 아니다.

 

 

 

구시대의 미션도 볼수있다.

 

 

 

관광객들로 이미 강가의 양쪽편 길엔 사람들이 붐빈다.

 

 

 

같은 배에 탄 사람들은 연신 주위로 카메라를 들이댄다.

 

 

 

 

전에 시카고의 시내 건축물을 배를타고 구경할때의 모습이 생각난다.

 

 

 

 

 

또 뉴 멕시코 주의 산타 페에서 거리를 걷던 때의 모습도 생각이 나곤한다.

 

이렇게 크루즈 순서를 마치고 발길을 백화점안으로 옮겨갔다.

 

 

 

IMAX 영화관에서 ALAMO 라는 영화를 보기 위해서이다.

 

알라모 요새를 둘러보기전 이 영화를 꼭 보기를 강추한다.

 

 

 

그리고 점심도 이렇게 해결하려고 한다.

 

 

 

 

티켓을 사고 시간이 좀 남아서 음악 소리가 나는곳으로 나가 보았다.

 

 

 

영화관 입구에서서 딸아이와 기념 촬영을 마지막으로 하기로 하였다.

 

 

  

 

그리곤 최종 목적지인 휴스턴으로 왔다. 이번 여행의 총 운전거리는 1717 마일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부녀가 이용한 숙소다.

 

 

 

 

딸애 덕분에 3일간 고급 호텔을 무료로 이용할수 있었다.

 

 

 

호텔서 무료로 제공하는 셔틀버스를 이용하여 나는 집으로 돌아오려고 휴스턴, 부시 공항으로 나갔다.

 

 

 

그리고 생전 처음으로 나는 비행기를 공짜로 딸아이 덕분에 이용할수 있었다.

 

 

앞으로 델타와 유나이티드 항공은 세계 어디를 가던지 부모는 무료로 이용할수 있을거라는

딸아이의 말에 오래 오래 승무원으로 일을 하라고 웃으면서 나는 말을 하였다. 

 

 

그러나 올해는 직장일이 바빠서 아마도 그 혜택을 마음껏 누리지는 못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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